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대법원 전합 “5·18 피해 가족 ‘정신적 위자료’ 청구권 유효”

조선일보 김은경 기자
원문보기

대법원 전합 “5·18 피해 가족 ‘정신적 위자료’ 청구권 유효”

속보
'케데헌', 아카데미 애니메이션상 후보...'골든' 주제가상 후보 지명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들이 2021년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은 청구권 시효가 지나지 않아 적법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 소송을 낼 수 없다고 본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2일 5·18 관련자 가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은 1980년 계엄군의 폭행·구금·고문 등으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의 가족들이 낸 것이다. 피해자나 유족들은 1990년대 초 5·18보상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보상금과 생활지원금을 받았다. 당시 법에는 보상금 지급에 동의하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해 더 이상 소송을 낼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법원도 오랫동안 이를 근거로 가족들이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봐 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21년 5월 이 조항이 가족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 청구까지 막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가족들은 같은 해 11월 “피해 당사자에 대한 보상과는 별도로, 가족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에서는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유효 기간’이 쟁점이 됐다.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가족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본다.

1심은 30여 년 전 보상금을 받은 가족들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했다. 이들이 ‘재판상 화해’ 간주 조항 때문에 그동안은 별도 위자료 소송을 낼 수 없었다며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나온 2021년 10월부터 3년 내에 다시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보상금을 받지 않은 가족들의 청구권은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보상금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금 지급 결정 시점(1990년대)부터 시효가 흘러 이미 완성됐다”며 원고 전원 패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소송을 낼 수 없었던 기간에는 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는 다수 의견으로 “가족들은 과거 보상금을 받으면서 ‘다시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했고, 국가도 이를 근거로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지 않은 가족들 역시 당시에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이다. 피해 당사자조차 국가 보상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여겨지던 상황에서, 가족들이 따로 소송에 나설 것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가해자인 국가가 국가배상 관련 법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법률관계를 복잡하고 불명확하게 만들었다”며 “그로 인해 피해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2021년 5월이 돼서야 비로소 가족들이 정신적 피해에 대해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이 법적으로 분명해졌다”며, 그때부터 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21년 헌재 위헌 결정 후 3년 이내에 소를 제기한 가족들은 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다만 노태악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내고 “5·18민주화운동으로 관련자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충분한 배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 법리로서는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구제는 입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오경미 대법관은 별개 의견에서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총체적으로 구제하려면, 청구권 소멸시효는 지났다고 보되, 국가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은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