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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억압받는 이들의 분투[북적book적]

헤럴드경제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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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억압받는 이들의 분투[북적book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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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시간외서 낙폭 더 늘려…10% 이상 폭락
부커상 최초 단편집 수상작 ‘하트 램프’
폭력·소외 속 고통받는 여성의 삶 조명
날카로운 풍자…연대와 희망 메시지도
2025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 ‘하트 램프’의 작가 바누 무슈타크. [게티이미지]

2025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 ‘하트 램프’의 작가 바누 무슈타크.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초의 단편집 수상작인 ‘하트 램프’가 국내에 출간됐다. 바누 무슈타크는 가부장적 이슬람 문화권에서 고통받는 인도 여성들의 삶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다.

12편의 이야기에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억압받고 소외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성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강제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남편은 부인을 소유물로 여기고, 폭력과 외도를 서슴지 않는다. 부인과 자식을 길거리에 내쫓고, 다른 여성을 집에 데려오면서도 오히려 당당하다. 여성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친정에서조차 외면당해 갈 곳을 잃는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특정 가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곳곳에 만연해 있다. “결국 그는 ‘랑고티 야르’, 그러니까 남자다. 모두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남자 말이다. … 그는 부끄러움 때문에 어둠 속에 숨어 있지 않아도 된다.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잘못이 아니니까, 용서를 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표현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긴밀한 연대는 여성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함께 버틴다. 엄마는 “해산한 뒤 40일 동안은 40개의 무덤이 아기와 산모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단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무덤이 하나씩 입을 닫지. 새로운 생명이 사람 몸에서 태어나는데, 그게 어디 작은 일이냐? 그건 어머니 자신이 새 생명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야”라고 말하며 출산한 딸과 며느리를 극진히 보살핀다.

여성들은 성별과 계급의 이중고 속에서도 피해자로 끝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삶을 버리지 않기 위해,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호소하고 일상에 작은 반향을 일으킨다. 굳건한 내면의 힘으로 버티는 여성의 생존은 그 자체가 투쟁이 된다. ‘하트 램프’라는 책의 제목처럼 여성은 외부의 빛이 사라졌을 때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켜고 서로를 비춘다.



작가이자 변호사, 인권 운동가인 무슈타크는 현장에서 함께 싸워 온 전사의 시선으로 여성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는 부커상과의 인터뷰에서 “종교, 사회, 정치가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 이하의 잔혹함을 가하고, 그들을 단순한 하위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라며 “여성들의 아픔, 고통, 무력한 삶은 내 안에 깊은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모든 꽃이 신부를 장식하는 행운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꽃은 무덤을 위해서만 꽃을 피운다”는 구절처럼 여성들의 삶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작가는 무거운 현실을 다루면서도 날카로운 풍자와 냉소적인 유머를 잃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고통에 함께 눈물짓다가도 작은 재치와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력에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김현경 기자

하트 램프/바누 무슈타크 지음·김석희 옮김/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