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담대 사기' 빌미로 지난해 해임 통보
대법관들, 공개변론서 정부 입장 반박
"중대 사유 맞냐"···파월·버냉키도 참관
WSJ 등 1·2심 이어 "트럼프 패소할 듯"
대법관들, 공개변론서 정부 입장 반박
"중대 사유 맞냐"···파월·버냉키도 참관
WSJ 등 1·2심 이어 "트럼프 패소할 듯"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에게 일방적으로 해임을 통보한 사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관들이 공개변론에서 한목소리로 비판 의견을 냈다. 주요 외신들은 이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소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에서 2시간가량 열린 쿡 이사 해임 사건 관련 공개 구두변론에서 대법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의문을 표시하는 질문을 다수 던졌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정부 측을 대리한 존 사우어 법무부 송무차관에게 “쿡 이사가 해임될 만큼의 기만 행위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사우어 차관은 “기만이거나 최소한 중대한 과실”이라며 “금융감독기관 인사가 금융 거래에서 기만이나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다면 그건 해임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쿡 이사가 대출을 받은 시점이 2022년 연준 이사 취임 전인 2021년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 대출 행위가 연준 이사의 직무와 무관한 행위인데 이를 이유로 해임하는 게 정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내비쳤다. 배럿 대법관은 “상점 절도, 좀도둑, 가정폭력 같은 건 어떠냐”고 되물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주담대 신청서에서 실수한 것이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느냐”며 “연준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한데 이런 문제를 너무 성급하고 충분한 숙고 없이 결정하면 그것은 훼손된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쿡 이사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부동산을 사면서 실제 용도를 숨기고 주담대 서류에 ‘주거용’으로 적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쿡 이사 측은 부동산 구입 목적을 ‘휴가용’이라고 적은 대출 예상 견적서를 제출하면서 대출 서류의 표기는 단순 실수였다고 맞서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쿡 이사는 대출 대상 부동산을 ‘거주지’가 아닌 ‘별장’으로 금융기관에 신고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도 “이런 해임이 허용된다면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하거나 붕괴할 것”이라며 “앞으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연준 인사들의 해임을 시도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고 말했다.
쿡 이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한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명으로 연준 이사가 된 인물이다. 최초의 흑인 여성 연준 이사이고 임기는 2038년 1월까지다. 쿡 이사의 혐의는 지난해 8월 빌 펄티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 청장이 포착해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공개됐다. 펄티 청장은 쿡 이사뿐 아니라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 애덤 시프 연방 상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인사들도 비슷한 혐의로 고발한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25일 주담대 사기를 빌미로 쿡 이사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쿡 이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통보해 이의를 제기한 이번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사기 혐의는 연준 이사를 맡기 전에 발생한 일이기에 충분한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15일 2심 법원도 트럼프 행정부가 쿡 이사에게 정식으로 대응할 기회를 주지 않는 바람에 정당한 절차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쿡 이사는 지금까지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사우어 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쿡 이사가 사기를 저질렀다는 글을 올린 지 5일 만에 해임을 통보한 사실을 두고도 방어권 행사에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심리 기간 동안이라도 쿡 이사에 대한 해임 조치를 유효화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대법관들은 이에 대해 SNS 글에는 연준처럼 중요한 기관의 고위직을 해임할 정도의 법적 효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이에 대해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쿡 이사가 직을 유지하도록 두는 것이 대통령이나 국민에게 얼마나 해가 된다고 믿어야 하느냐”며 “쿡 이사가 즉각적인 위협이라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변론이 종료된 뒤 대다수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패소를 점쳤다. 뉴욕타임스(NYT)는 “대법원이 쿡 이사 해임을 기각할 태세”라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가 기각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CNN 역시 “대법관들이 쿡 이사 해임에 회의적”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변론은 현재 연준 청사 공사 관련 수사를 받는 제롬 파월 의장과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참관해 쿡 이사를 지지했다. 쿡 이사는 변론 종결 뒤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은 연준이 증거와 독립적 판단에 따라 금리를 정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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