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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풍차 돌리기’ 이득일까…완행열차에 올라탄 건 아닐까

동아일보 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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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풍차 돌리기’ 이득일까…완행열차에 올라탄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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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예금 이자와 만기를 계산하는 금융소비자. 예금 금리 비교와 자금 운용 전략을 점검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정기예금 이자와 만기를 계산하는 금융소비자. 예금 금리 비교와 자금 운용 전략을 점검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3%대 예금 금리 소식에 금융소비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금리가 정점에 근접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 푼이라도 높은 이자를 챙기기 위해 매달 통장을 쪼개 가입하는 ‘통장 풍차 돌리기’를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매달 만기 이자를 타는 ‘손맛’과, 내 돈을 직접 굴리고 있다는 ‘심리적 통제감’이 주는 재미가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하지만 이 선택이 실제로 내 이자를 불리고 있는지, 아니면 ‘부지런한 손해’를 쌓고 있는지는 통장을 열어본 사람만 안다.

지금이 정말 고금리의 ‘막차’ 구간이라면, 풍차를 돌리는 선택이 오히려 실질적인 수익을 깎아 먹는 역설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풍차 돌리기는 목돈을 한 번에 넣지 않고 매달 나눠 예금에 가입하는 방식이다. 향후 금리가 더 오를 경우, 나중에 들어가는 자금은 더 높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핵심이다. 다만 이 방식은 금리가 오를 때만 유리하고, 멈추거나 내려가는 구간에서는 기회비용이 커지는 구조라는 전제를 안고 있다.

● 왜 ‘막차’라는 말이 나올까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여러 차례 연속 동결했다. 최근 통화정책방향문에서는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빠지면서, 추가 인하 기대가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물가와 경기 흐름에 따라 방향성은 여전히 시장의 관심사다.

이 흐름은 은행 예금 금리에 먼저 반영된다. 20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시중은행 정기예금(12개월·단리 기준) 기본 금리는 대부분 연 2%대 후반에 형성돼 있다. 우대금리를 포함해야 연 3%대 초반을 맞추는 구조다. 가입 시점을 고민하는 사이, 금리 상단이 점차 낮아지는 흐름이 포착된다.


● 1200만 원 풍차 돌려보니…이자는 ‘반 토막’

문제는 이 ‘기대’가 틀렸을 때, 손해는 조용히 누적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1200만 원의 여윳돈을 가진 직장인이 모든 가입 시점에서 동일한 우대금리(연 3.2%)가 적용된다는 가정하에 예금에 가입한다고 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이자소득세 15.4% 적용)

한 번에 1200만 원 예치: 1년 뒤 세후 이자 약 32만 원
매달 100만 원씩 12개월 풍차:
1년간 세후 이자 합계 약 17만 원→ 결과: 같은 금리 조건에서도 풍차 방식을 택하면 약 15만 원을 덜 받는다.


매달 통장을 새로 개설하고 관리하는 수고를 감수하고도, 수익은 정기예금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차이는 ‘시간’에서 나온다. 이자는 은행에 맡겨둔 기간에 비례한다. 풍차 방식은 전체 금액이 고금리를 적용받는 평균 기간을 스스로 줄이는 구조다.

● 우대금리라는 함정…풍차는 3%대를 타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더 냉정한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연 3%대 초반 금리는 대부분 ‘첫 거래’ ‘급여 이체’ ‘카드 실적’ 등 조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다.


풍차 돌리기를 하면 첫 통장은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기존 고객으로 분류돼 혜택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후 통장은 기본 금리(2%대 후반)에 묶이면서, 실제 수익률 격차는 시뮬레이션보다 더 벌어질 수 있다.

● “유불리는 금리 흐름과 자금 상황에 달렸다”

풍차 돌리기와 정기예금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설명이다. 자금 사정과 향후 금리 흐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풍차 돌리기는 저축 습관 형성이나 중도해지 위험 분산, 분산 투자 측면에서 장점이 있고, 정기예금은 안정적인 단기 자금 운용에 유용하다”며 “개인의 저축·투자 성향에 맞는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풍차 돌리기는 수익률 전략이라기보다 현금 흐름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에 가깝다”며 “가입 시점마다 금리가 달라지는 만큼, 금리 변동성 관리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향후 금리 전망과 자금 상황에 따라 유불리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시각을 종합하면, 풍차 돌리기는 ‘수익 극대화’보다는 ‘자금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에 가깝다. 금리 변동성에 대응하는 데는 유연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일정 금리를 전체 자금에 확정하는 정기예금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의미다.

● 재테크인가, 통제형 취미인가

사실 풍차 돌리기를 지탱하는 것은 숫자보다는 심리다. 매달 100만 원씩 12개의 통장을 만드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그만큼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준다.

하지만 분석한 결과, 이 심리적 만족감의 대가는 생각보다 비쌌다. 돈을 불리는 ‘설계’라기보다, 자칫 부지런해 보이고 싶은 ‘취미’에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예금 풍차 돌리기’가 고금리 막차 전략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필요한 건 부지런한 통장 쪼개기가 아니라, 내 돈이 ‘얼마 벌고 있는지’보다 ‘언제 쓸 돈인지’를 먼저 정하는 설계다. 게티이미지뱅크

‘예금 풍차 돌리기’가 고금리 막차 전략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필요한 건 부지런한 통장 쪼개기가 아니라, 내 돈이 ‘얼마 벌고 있는지’보다 ‘언제 쓸 돈인지’를 먼저 정하는 설계다. 게티이미지뱅크


● 수익보다 중요한 건 ‘자금의 용도’

결국 기준은 금리 전망이 아니라, 이 돈을 언제 써야 하는가다. 전문가들은 풍차 돌리기의 장점을 수익률보다 유동성에서 찾는다. 매달 일부 자금이 풀리는 구조는 예기치 않은 지출에 대응하기 쉽다.

따라서 1년 안에 써야 할 단기 자금이라면 풍차나 파킹통장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2~3년 이상 굴릴 수 있는 여유 자금이라면, 현재 금리를 최대한 길게 확보하는 고정 예금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팩트 필터]
지금 나는 ‘관리’를 하고 있는가, ‘심리적 위안’을 얻고 있는가.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소액 분산은 오히려 기회비용을 키울 수 있다.
필요한 건 부지런한 통장 쪼개기가 아니라, 내 돈이 ‘얼마 벌고 있는지’보다 ‘언제 쓸 돈인지’를 먼저 정하는 설계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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