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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승부할 결심 [김은식의 이사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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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승부할 결심 [김은식의 이사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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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지난해 9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지난해 9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은식 | 작가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나는 상대 투수의 베스트 피치를 노린다.” ‘야구장인’으로 불리는 타자 스즈키 이치로의 말이다. 한때 제구력의 상징으로 통했던 투수 임호균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상대 타자의 약점보다 강점을 노려야 해. 정확히 공략하면 배트는 반드시 끌려 나오지.”



1987년 8월25일 꼴찌팀 청보 핀토스의 투수 임호균은 최강팀 해태 타이거즈 타자들의 강점을 골라 결정구를 던졌고, 단 73개의 공으로 1시간54분 만에 경기를 끝내는 ‘역대 최소 투구수 완봉승’ 기록을 완성했다. 전성기의 임호균과 이치로가 풀카운트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결과야 모르지만 멋진 야구였을 것이다.



상대의 약점과 나의 강점이 만나게 하라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승부의 기술이다. 하지만 야구는, 그리고 삶은 때로 정반대의 지혜를 요구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대의 약점을 찌르겠다고 훤히 드러난 곳에 덫을 놓고 기다려봐야 소득은 시원치 않을 테고, 어느새 제구력은 흐트러지고 볼카운트는 불리해진다. 그렇게 주자가 쌓이고 실점이 늘어가다 덜컥 ‘새가슴 투수’라는 별명까지 붙고 보면 되돌리기는 어려워진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사이비와 이단은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라고 했다. 통일교와 신천지를 가리킨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핵심인가? 거대 종교단체들이 지금껏 누려온 온갖 면책의 특권과 점입가경의 권력화와 정치오염은 아직 사회악의 문턱에 이르지 못했는가?



정치는 종교의 힘을 빌리고 특혜로 갚았다. 그 결과 종교단체는 일종의 치외법권을 누렸고 교단 내부의 부당노동행위, 부정채용, 성폭력과 각종 비리 앞에서 법과 원칙은 번번이 머뭇거렸다. 여전히 빈틈 많은 종교인 과세가 대단한 ‘진전’으로 평가되는 현실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핵심을 피해왔는지를 반증한다.



한국납세자연맹과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17년 8월24일 국회 정문 앞에서 ‘종교인 과세 유예법안 발의 국회의원 사퇴 요구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납세자연맹과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17년 8월24일 국회 정문 앞에서 ‘종교인 과세 유예법안 발의 국회의원 사퇴 요구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의 공은 늘 안전한 곳만 노린다. 표를 움직이거나 조직적으로 반발할 만한 곳을 피해 맞아도 아프지 않을 상대만 고른다. ‘사이비 이단’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편리하다. 그러나 잘해봐야 투수 팔만 피곤해질 무의미한 유인구다.



사실 우리 사회를 지켜온 것은 유명한 종교지도자들의 신탁이나 헌신이 아니라 평신도들의 조용한 분별력이다. 그들은 예배당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투표소에서는 스스로 판단한다. 각자 거느린 신도 수만 합해도 의석 몇개는 쉽다던 대형교회 목사들의 정치세력화 시도가 번번이 무산된 이유다. 그 지혜로운 딴짓 덕분에 우리는 요란한 공중의 소음 아래서도 종교갈등 없는 일상을 살아왔다.



수백만 신도가 뒤에 있다는 허세를 두려워한다면 정면승부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묵묵히 사회의 상식을 지켜온 양심적 종교인들을 믿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종교를 공격하는 것도 비호하는 것도 아니다. 세속의 법 앞에서 예외가 되지 않도록, 그래서 세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신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종교에 대한 존중이다.



임호균은 해태 타자들의 강점을 직시했고 정확히 그곳에 자신의 최고 구종을 던졌다.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회피하는 순간 제구는 무너지고 경기는 길어져 가뜩이나 약했던 그의 야수들이 실책을 남발했을 것이다. 73개의 공으로는 이길 수 있지만 200개를 던지면 그 경기도, 다음 경기도 어려워진다. ‘사이비 이단’이 아닌 ‘종교’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짧고 명료한 승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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