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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선진 한국서 친위 쿠데타… 과거 내란보다 죄질 무겁다”

조선일보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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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선진 한국서 친위 쿠데타… 과거 내란보다 죄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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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은 내란” 한덕수에 중형선고
자리 일어나 선고 듣는 한덕수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내란 사건’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이날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이 한 전 총리다./서울중앙지법

자리 일어나 선고 듣는 한덕수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내란 사건’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이날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이 한 전 총리다./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21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특검의 구형량(징역 15년)을 훌쩍 뛰어넘는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과거 (군사 정권 시절의) 내란 판례를 양형 기준으로 삼을 수 없을 만큼 죄질이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어 ‘친위 쿠데타’로 인해 생긴 경제적·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 사건에서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사람 중 최고형이 선고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심에서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당시 내란 사건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판단해 이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서 “위헌·위법한 주장에 불과한 ‘계몽적 계엄’을 당연하듯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선거 제도를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12·3 계엄은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실례로 ‘서부지법 폭동’ 사건을 거론하기도 했다.

재판장인 이진관 부장판사는 “내란은 몇 시간 만에 종결됐고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는 무장 군인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라고 말하면서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부장판사는 이 대목에서 5초 정도 말을 멈췄다가 이어 “피해가 경미했다거나 짧은 시간이었다는 점을 양형에 깊이 고려할 수 없다”고 했다. 선고 직후 한 전 총리는 힘겨운 듯한 목소리로 “재판장님 결정에 겸허하게 따르겠다”고 했다.

본지가 입수한 348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의 수단으로 비상 계엄을 선포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갖출 수 있을 만큼만 대통령실로 소집했다”고 했다. 당시 한 전 총리가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손가락으로 숫자 4나 1을 표시하며 부족한 의사정족수를 확인하는 모습 등을 유죄 증거로 삼았다.

애초 특검은 한 전 총리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방조범으로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내란죄에 방조범은 없다”며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형법상 내란죄는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눠 벌이는 범죄이고 외부 조력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계엄 전 국무회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도록 도운 것을 내부자로서 내란의 중요 임무를 맡아 수행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한 전 총리는 그동안 대외 신인도와 경제 타격 등을 이유로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을 만류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국헌 문란 목적의 포고령 발령과 군경을 집합해 폭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의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내란 가담에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한 전 총리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 지시 이행 방안을 논의한 것도 “헌법이 금지한 언론·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이라고 했다.

이 밖에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사후 계엄 선포문 표지를 만들어 서명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 수사가 시작되자 이 문서를 파쇄하도록 지시한 혐의(대통령기록물법 위반 등),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출석해 “계엄 선포문을 못 봤다”고 위증한 혐의 등도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판결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국방장관 등 계엄을 주도한 사람들의 유죄는 물론 중형 선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정치인 체포 지시에 대한 판단 없이, 군경 투입만으로 내란의 폭동성이 인정된 점은 윤 전 대통령에게도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중형 선고를 예상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선 이번 판결은 내란죄를 너무 포괄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1심과 한 전 총리의 항소심 등 후속 재판에서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계엄에 가담한 하급자들에 대해 면밀하게 다시 판단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 특히 “12·12나 5·18 등 유혈 사태보다 더 무겁게 처벌한 부분도 법리에 맞는지 다시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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