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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지멘스에 DHL까지… 독일의 기술력, 썰매에 다 담겼다

조선일보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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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지멘스에 DHL까지… 독일의 기술력, 썰매에 다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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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요건 몰랐죠?] ‘극강’ 독일 봅슬레이의 비밀
독일 남자 봅슬레이 팀은 작년 11월부터 지난 18일까지 열린 총 7번의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했다. 2인승과 4인승 경기에서 총 14개의 금메달을 땄다. 은메달 14개도 모두 독일 차지였고, 독일이 놓친 동메달 4개를 한국·영국 등 4국이 하나씩 나눠가졌다. 다음 달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도 독일이 2·4인승에 걸린 금·은·동메달 6개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고 시속 150㎞를 넘나들며 100분의 1초를 다투는 봅슬레이에서 독일의 힘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봅슬레이 관련 R&D(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한다. 여기에다 BMW·지멘스·알리안츠 같은 독일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봅슬레이 차체와 선수들의 장비 개발에 힘을 보태고 있다. 독일 팀의 썰매가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 기술력의 집약체라는 얘기가 과장이 아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글로벌 자동차 기업 BMW는 수년 전부터 봅슬레이 기록 단축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타트’ 관련 연구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가속 페달이 없는 봅슬레이는 출발선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폭발적인 스피드로 썰매를 미느냐가 최종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봅슬레이 선수들은 얼음 트랙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썰매를 밀기 위해 징을 박은 신발을 신는다. BMW는 첨단 자동차 제조 기술을 동원해 독일 대표팀 선수들이 신는 특수 스파이크를 개발해왔다. 자동차 공장에서 쓰는 3D 프린팅 기술로 선수마다 맞춤형 플레이트(신발 바닥)를 만들어 제공한다. ‘화룡점정’은 BMW가 엔진 제조 기술을 접목해 만든 징(스파이크)이다. 얼음 트랙을 내딛는 선수들의 주행 특성과 힘, 발바닥에 가해지는 압력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마모에 강하면서 최고의 접지력을 낼 수 있게, 특수 합금에 이온화 질소를 침투시킨 징을 제작했다. 선수들의 신발 밑창엔 250개 이상의 작은 징이 박히는데, 선수들의 달리는 스타일에 따라 징을 배치하는 위치도 달라진다.

봅슬레이 차체 개발은 정부 기관인 독일 스포츠 장비 개발 연구소(FES)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FES는 1960년대 동독 시절 세워진 스포츠 전문 연구소로 사이클·조정·스키·썰매 등 장비 의존도가 높은 스포츠 종목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봅슬레이의 경우 FES가 수십 년간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팀 구성에 맞춰 최적의 경기력을 낼 수 있는 썰매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제공한다.

썰매 제작 때 가장 핵심 기술은 주행 때 공기 저항을 줄이고, 썰매 날의 불필요한 마찰력을 줄이는 것이다. FES는 밀라노 동계 올림픽 때 봅슬레이 경기가 열리는 트랙을 디지털로 구현해 가상 주행을 반복해 차체를 최적화한다. 또한 트랙의 커브 정도와 빙질 등을 분석해 썰매 날을 제작하고, 썰매 제동 때 얼음이 얼마나 손상되는지도 따진다.


FES는 봅슬레이 썰매 제작 때 민간 기업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기술 수준을 더 끌어올린다. 산업용 기술 기업 지멘스를 통해서는 차체 설계,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곡면 설계에 특장점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공기 저항과 방향, 선수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힘 등을 고려해 썰매를 만들 수 있다. 부품 업체 셰플러에서는 운전대 역할을 하는 조향줄과 두 부분으로 된 차체의 연결 고리에 쓰는 특수 소재 베어링을 제공받는다. 이 밖에 세계적 보험사 알리안츠의 자동차 기술센터와 협업해 썰매 안에서 전복을 막아주는 안전벨트를 도입해 시험 중이고, 머리 부상을 방지하는 HIP(헤드 임팩트 프로텍터)도 개발해 장착을 준비하고 있다. 택배 업체 DHL은 10t 안팎의 썰매를 특수 포장해 적시에 운송해 선수들을 돕는다.

종합 기술 지원의 혜택은 당연하게도 독일 선수들만 누린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관계자는 “사실상 독일 정부가 주도해 만든 썰매라서 남들은 돈을 줘도 사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나라는 기술력 격차를 실감하면서도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와 제휴했지만 성과가 미미하다. 영국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매클라렌과의 협업이 끊겼다. 한국 대표팀은 오스트리아와 라트비아 업체가 만든 썰매를 탄다.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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