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한 점] <3>
메리 커샛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
메리 커샛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
메리 커샛,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1900). 캔버스에 유화, 67.9×57.8cm. /국립중앙박물관 |
인상주의는 19세기 근대 도시 파리에서 태어나 도시의 일상을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이 변화의 중심에서 여성 화가의 이름은 드물었다. 그런 시대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여성 화가 메리 커샛은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로 활동하며, 남성 중심 화단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표현했다.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는 대담하고 자신감 있는 붓질이 눈길을 끈다. 정원에서 뛰어놀다 잠시 멈춘 듯한 소녀의 모습, 드레스가 살짝 흘러내리는 찰나의 순간을 그렸다. 메리 커샛의 그림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화가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을까.
메리 커샛은 184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금융업과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둔 전형적인 미국 중상류층 가정 출신이었다. 그림은 교양의 일부로 여겨지던 환경이었지만 그는 그 틀에 머물지 않았다. 스물두 살이 되던 1866년 커샛은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명문 미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 입학이 어려웠던 그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명작을 모사했다. 이후 그의 인생을 바꾼 만남이 찾아온다. 에드가 드가와의 교류였다. 드가의 권유로 1879년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하며 커샛은 인상주의 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빠른 붓질과 과감한 구도는 인상주의의 언어였지만, 그가 선택한 주제는 달랐다. 거리와 군중 대신 여성과 아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장에서 메리 커샛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김지호 기자 |
1900년에 그린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는 후기 작품이다. 아이의 피부와 드레스에는 빛이 머문 듯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화면에는 봄날의 공기가 고요하게 흐른다. 이 작품의 모델 ‘마고’는 커샛이 살던 동네에서 자주 만나던 아이로, 본명은 마고 뤽스다. 그는 커샛의 그림에 50여 점 이상 등장할 정도로 자주 그려진, 이른바 ‘전속 모델’과 같은 존재였다.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바느질하는 젊은 어머니’에도 마고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그림은 ‘어머니 무릎에 기댄 소녀’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 속 모녀가 실제 모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커샛은 아이와 어머니를 각각 다른 모델로 그려, 화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 화가의 시선으로 구성된 관계였다. 커샛은 마고뿐 아니라 조카와 친구의 딸도 즐겨 그렸다.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은 장식적인 존재가 아니다. 생각에 잠기고, 어른과 시선을 나누며,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주체로 등장한다. 이는 여성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던 당시 미술의 시선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이런 커샛의 작품을 가장 열렬히 지지한 인물이 미국인 여성 컬렉터, 루이진 하브마이어였다. 그는 커샛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다. 커샛이 파리의 새로운 미술을 소개하면 하브마이어는 모네와 드가, 세잔의 작품을 과감히 구입했다. 그의 컬렉션은 훗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돼 중요한 인상주의 컬렉션을 이뤘다. 두 사람은 여성 참정권 기금을 위한 전시도 기획했다. 파리에서 유학하던 딸에게 커샛의 아버지는 여성이 혼자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썼다. 이에 대한 커샛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버지, 저는 결혼보다 그림을 택합니다. 그것은 저의 직업입니다.” 메리 커샛의 회화 속 아이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회가 허락하지 않았던 길을 선택한 한 여성 화가의 시선으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전시명: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장소: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간: 2026년 3월 15일까지
▲주최: 조선일보사·국립중앙박물관·메트로폴리탄박물관
▲문의: 1644-7169
▲입장료: 성인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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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심·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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