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배 위에서 사람들이 요란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 그림. 중세 말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대표작 중 하나다. 뜻밖에도 제목은 ‘바보들의 배’(1490∼1500년·사진)다. 화가는 왜 이 배에 탄 사람들을 ‘바보’라고 불렀을까.
이 그림은 원래 삼면화의 일부로, 7대 죄악 가운데 대식과 탐욕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배 위 사람들은 긴 나무판을 식탁 삼아 흥겹게 먹고 마신다. 수도승과 수녀는 마주 앉아 노래를 부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줄에 매달린 커다란 빵을 먹으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술병을 든 여자는 이미 취해 거의 쓰러진 남자에게 술을 더 권한다. 배 아래 물속에서는 벌거벗은 남자들까지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뻗고 있다. 돛대 위로 올라간 남자는 칼을 들고, 위에 매달린 통닭을 끌어내리려 한다.
소란스럽고 우스꽝스럽지만, 인물 하나하나는 분명한 상징을 지닌다. 음식을 향해 입을 벌린 이들은 굶주린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가졌지만 멈추지 못하는 탐욕을 상징한다. 보슈는 도덕과 절제의 상징이던 성직자들을 그 탐욕의 한가운데 배치함으로써 권위와 이성마저 욕망에 잠식된 사회를 드러낸다. 오른쪽 나무 위 광대 복장을 한 남자는 혼자 술잔을 게걸스럽게 들이킨다. 중세에서 광대는 이성을 잃은 존재, 곧 바보로 여겨졌다. 여기서 그는 가장 정확한 표식을 지닌 인물이다. 이 배 자체가 바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부재다. 노를 젓는 사람도, 키를 잡은 선장도 없다. 배는 분명 물 위에 떠 있지만, 그 누구도 배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몰두할 뿐. 그래서 이 배는 바보들의 배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가 아니라, 방향 자체를 잃었기 때문에.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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