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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시간, 아들의 선택..소설 '계엄군'이 묻는 '명령 앞 태도' [책을 읽읍시다]

파이낸셜뉴스 유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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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시간, 아들의 선택..소설 '계엄군'이 묻는 '명령 앞 태도'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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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계엄군 표지 일부.

소설 계엄군 표지 일부.


신성민 작가(왼쪽).

신성민 작가(왼쪽).


[파이낸셜뉴스] 소설은 종종 이미 끝난 사건을 다시 불러온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과거를 재현하기보다,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신성민 작가의 신작 소설집 '계엄군'은 그런 작품이다.

'계엄군'은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아버지와, 세대를 건너 다시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 아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왔고, 아들 역시 자발적 선택이 아닌, 상황 속에서 계엄군이 된다. 소설은 이 반복되는 구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묻는다.

작품의 인상적인 지점은 결단의 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주인공은 위헌·위법한 명령 앞에서 행동을 멈춘다. 하지만 이 선택은 영웅적 장면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소설은 총을 내려놓은 이후의 시간, 그 결정이 남긴 흔적과 무게를 차분히 따라간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부자(父子) 관계가 놓여 있지만, 소설이 말하는 것은 혈연 그 자체가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가며 살아가고, 동시에 아버지가 겪은 상흔을 기억으로 떠안는다. 필연처럼 반복된 상황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넘지 못했던 경계 앞에 다시 선다. 그리고 소설은 그 경계를 넘었는지 여부보다, 그 앞에서 멈춰 섰던 인간의 내면을 응시한다.

'계엄군'은 사건의 중심부보다 주변부에 머문다. 지휘부의 판단이나 정치적 맥락은 최소한으로만 제시되고, 대신 현장에 있었으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개인들의 시선이 서사를 이끈다.

군중의 소음, 혼란 속에서 갈라지는 명령의 의미, 그리고 그 명령을 받아든 개인의 침묵과 망설임이 촘촘하게 쌓인다. 신 작가는 이를 통해 사태를 단순한 찬반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작품 말미에서 주인공은 항명을 선택한 대가로 군복을 벗는다. 이후의 삶은 결코 낭만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사회로 돌아온 그는 이전의 계급과 권위를 모두 내려놓은 채, 다시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소설은 ‘옳은 선택’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선택의 윤리를 미화하지 않는다.

신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대해 “공동의 기억은 일부가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계엄군'은 특정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재현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든 설정과 인물은 허구이며,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학적 상상력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독자는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역사적 장면과 그 안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모습이 오늘의 현실과 자연스럽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계엄군'은 독자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 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만약 같은 상황이 다시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선택 이후의 삶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소설은 그 질문을 남긴 채 조용히 물러난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외에도 문예지에 기발표된 단편 두 편이 함께 수록됐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개인과 제도, 선택과 책임이라는 문제의식은 일관되게 이어진다.

'계엄군'은 빠르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읽고 난 뒤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질문을, 과장 없이 건네는 소설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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