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2025년 10월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김현정 | 방송작가·‘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저자
내 주변에는 서울대 나온 사람이 한 트럭쯤 된다. 과장이 아니다. 서울대 버금가는 대학까지 합하면 버스 몇대쯤은 너끈히 채우고도 남는다. 머리 좋은 사람이 차고 넘치는 언론사에서 만난 기자, 피디, 정치인, 전문가 대부분이 그랬다. 서울대 옆에 서울대, 그 옆자리 고려대, 건너편에는 연세대. 이를테면 나는 긴 세월 ‘서연고’ 밭에서 살아온 셈이다. 덕분에 나는 서울대를 종류별로 구분할 줄 안다. 겸손하고 일도 잘하는 서울대, 머리는 좋으나 뺀질대는 서울대, 어떻게 거길 들어갔나 싶은 서울대까지. 본인이 어느 쪽인지 궁금하다면 나에게 개인 톡을 보내시라.
특징이 있다. 금방 출신 학교가 드러난다. 경험칙상 절반 이상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밝힌다. 대놓고 말하거나 슬그머니 캠퍼스의 별칭 또는 이름난 동문의 이름을 내민다. 아, 그러시군요. 물론 억울한 이들도 있을 테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대신 알려준다. 저 선배 알고 보면 서울대 나온 브레인이야.
인정한다. 전국 수험생 상위 1% 이내, 대단한 타이틀이 분명하다. 본인은 물론 부모 어깨에는 절로 힘이 들어가고, 서울대생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래만 잘 불러도 남다른 칭찬을 받는다. 역시 서울대라 곡 해석이 남다르군요. 자주 속이 뒤틀리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학벌 사회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대놓고 묻지 않는 이상 먼저 출신 학교를 밝힌 적은 드물다. 무에 자랑스러운 이력인가 싶었고, 실력에 앞서 학력으로 평가절하되고 싶지 않다는 따위의 복잡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이름난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시절, 나의 출신 학교를 두고 온갖 추측이 오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 황당해한 경험마저 있다. 짐작건대 다들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친밀한 사이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서로의 출신 학교를 모른다. 대부분은 특별히 잘난 구석 없어도 학력과는 무관하게, 그러나 잘도 살아간다. 그게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95% 이상,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저력이다.
‘김현지 동문을 찾습니다.’ 몇달 전 거리 한복판에서 황당한 펼침막을 발견했다.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출신 대학이 의심되니, 동문들이 나와 학력을 입증하라는 주장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데 공개된 정보가 없었고, 국정감사에도 안 나온다 하니 신상이 다들 궁금할 만도 했다. 하지만 학력이 공개되자 줄을 이은 논란은 ‘못 믿겠다’는 비아냥이었다. 당장 동문 단체 카톡방이 소란해졌다. ‘현지 선배 ○○랑 친했잖아’, ‘학생회관 같은 층에 동아리방 있지 않았음?’, ‘과사무실에 전화해보면 될 텐데 왜들 저래?’ ‘우리 학교가 그렇게나 우스워?’ 심지어 학보사 시절, 경제학과 4학년 김현지 학우를 인터뷰한 1학년 수습기자가 나였다. 동문이라고 제보하면 1억원을 주겠다는 목사도 있던데 ‘김현지 최초 단독 인터뷰’라고 세상에 자랑해야 할까.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고많은 ‘김현지 논란’을 놔두고 고작 대학 이야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못난 가정을 해본다. 만약 김 실장이 이름난 대학을 나왔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반응했을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대학을 안 나왔다고 슬그머니 모욕하는 검사가 있었고, 일부 정치인의 프로필 아래에는 대학 캠퍼스가 본교냐 어디냐를 두고 논란의 댓글이 달린다. ‘지잡대’ 나왔는데 번역 잘하시네요? 조롱 섞인 메시지를 시원하게 받아쳐 화제가 된 번역가도 있었다. 출신 대학이 그렇게나 궁금한가. 동문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세워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나는 김현지 실장이 청와대에서 ‘맡은’ 업무를 잘 해냈으면 좋겠다. 실용 정부라는 목표에 걸맞게 행동하면 된다. 무성한 비선 논란 역시 떳떳하게 정면으로 돌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억하기를. 묵묵하게 감시하며 지켜보는 동문이 한 트럭이다. 물론 선배라고 봐주지는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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