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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노동을 나누는 AI 챗봇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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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노동을 나누는 AI 챗봇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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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챗봇의 빠른 진화는 오류·맞춤법 검증 등 ‘언어 노동’을 상당 부분 줄여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챗봇의 빠른 진화는 오류·맞춤법 검증 등 ‘언어 노동’을 상당 부분 줄여준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2025년부터 부쩍 인공지능(AI) 챗봇(대화 로봇)을 쓰는 일이 늘었다. 초창기만 해도 딱히 싫어했다기보다 여러모로 번거로워서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질문을 쓰고 답을 보는 데 일반 검색보다 시간이 오히려 더 걸리기도 하고, 화려한 답에 비해 오류가 많아서 확인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자주 쓰게 된 까닭은 뭘까.



거의 매일 글을 쓴다. 쓰고 싶은 생각과 내용을 정리한 뒤 특정 언어의 문장으로 써야만 ‘글’이 된다. 사적인 글은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부담이 없지만, 언론사 지면이나 책에 담을 ‘원고’는 대중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신경 쓸 부분이 매우 많다. 사적인 글과 ‘원고’ 사이에 이메일, 문자, 에스엔에스(SNS) 포스팅 등도 있다. 이 역시 ‘상대방’이 있으니 여러 면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쓸 때가 많다. 세 언어는 저마다 다른 특징을 지녔고, 그걸 사용하는 느낌도 사뭇 다르다.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과정은 똑같다. 생각과 내용을 정리한 뒤 특정 언어의 문장으로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언어 노동’이 시작된다. 글의 전체적인 구도를 구상하면서 동시에 적절한 표현과 단어를 찾아야 한다. 물론 표기법도 지켜야 한다. 한국어는 한글 맞춤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지만, 확인해야 할 게 여전히 많다. 영어는 컴퓨터의 스펠링 자동 체크에서 놓치는 오류가 많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쉼표 같은 문장 부호, 외래어, 인명 표기 등도 제각각이다. 글을 쓸 때는 생각과 지식을 담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 사항을 정확하게 작업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언어 노동’의 양은 상당하고 그 강도는 꽤 높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언어 노동의 양과 강도가 만만치 않아서 디지털 혁명과 맞물려 이 부분을 해결해줄 도구의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워드 프로세서의 교정 기능부터 시작해 웹에서의 번역 기능을 거쳐 오늘날의 챗봇까지 발달했다. 그동안 다양한 도구를 통해 도움도 많이 받고 잘 사용하긴 했지만, 기대한 만큼 노동의 양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2025년부터 챗봇의 기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사실 확인과 오류를 찾는 것부터 오탈자와 맞춤법까지 사소하고 단순하지만 양이 엄청나게 많았던 일을 챗봇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해결하고, 그 결과도 신뢰할 만해서 덕분에 언어 노동이 많이 줄었다. 노동의 양이 줄어드니 글의 내용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훨씬 더 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의견을 제시해준다. 그 덕분에 내 글이 더 풍성해지기도 한다. 독자에게 내가 전하는 내용과 주제에 대해 함께 더 생각해보자는 제안의 태도가 반영되기도 한다. 이메일과 같은 사적인 글도 다양한 표현의 차이에 관한 정보가 제공되면서 글을 쓰는 과정이 훨씬 더 즐거워졌다.



말을 할 때도 도움을 받는다. 예전 일본 교토의 한 대학에서 야간 영어 수업을 할 때였다. 학생 중에 국적이 다른 부부가 있었다. 두 사람은 집에서 인공어 에스페란토어를 쓴다고 했다. 원어민이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의 언어를 쓰지 않아 ‘언어적 강자’가 없고, 평등하게 비원어민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언어적 강자인 영어 원어민과 대화를 할 때면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챗봇을 쓰면 화면 또는 무선 이어폰을 통해 말하는 사람의 모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에스페란토어처럼 언어적 강자가 없다. 모두 다 평등한 입장에서 언어 노동을 나눈다. 아직까지는 영어가 국제 공통어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모어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럴 때 챗봇은 서로 다른 언어로 옮기는 노동의 과정을 상당 부분 해결해준다.



챗봇의 이면을 의식하고 있다. 조심해야 할 부분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현재 챗봇으로 인해 언어 노동이 훨씬 줄었다는 것, 그로 인해 더 즐겁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나아가 앞으로 언어의 장벽이 사라질 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2026년 1월의 심경으로 일단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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