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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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공문서 작성
다른 혐의들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는 유죄로 인정합니다. 관련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강의구, 김용현, 윤석열과 순차 공모하여 마치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인 비상계엄 선포가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선포 전에 부서한 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여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관련 사법 절차 등에 행사할 목적으로 그 직무에 관하여 윤석열이 서명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 표지를 허위로 작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강의구로부터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서명을 요청받으면서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하였고, 그에 부착된 비상계엄 선포문이 자신이 소지한 문서와 동일하다는 취지에서 서명하였으며, 문서의 기재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함으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허위 공문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피고인에게는 허위 공문서라는 인식과 이를 행사할 목적이 없었으며, 피고인은 윤석열, 김용현 강의구와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다투고 있습니다.
살피건대 여기서 허위란 표시된 내용과 진실이 부합하지 않아 그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허위 공문서 작성죄는 허위 공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그 내용이 허위란 사실을 인식하면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비상계엄 선포 표지는 2024년 12월 3일자로 성립한 문서로써, 대통령이 헌법 규정에 따라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 관계 및 그로써 헌법상 요구되는 기관 내부적 권력 통제 절차가 작동하였음을 증명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실 비상계엄 선포 표지는 2024년 12월 3일 이후에 피고인 김용현, 윤석열이 순차 서명함으로써 문서로서 성립하였고, 윤석열은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문서로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표시된 내용과 진실이 부합하지 않아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허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은 강의구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표지를 받아 자신의 서명란 외에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서명란이 있는 것을 보았고, 작성일이 2024년 12월 3일로 소급되어 기재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강의구는 피고인에게 부서라는 요건을 갖춰야 하고 윤석열의 서명을 받아야 하며, 피고인과 김용현의 서명도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서명을 요구하였고, 피고인은 작성일을 소급한 문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피고인은 강의구에게 나중에 작성된 게 알려지면 괜한 논란이 될 수 있겠다, 문서가 없더라도 국무회의 실체는 있지 않느냐고 말하며 폐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강의구가 헌법에 따른 문서주의와 국무총리 및 관계 국무위원의 부설한 절차 요건을 갖추어 이 사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음을 증명하려는 허위의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서명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국무총리 서명날에 서명한 후 윤석열과 김용현이 각각 그들의 직위에 해당하는 서명란에 서명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피고인은 강의구 등이 추후 그러한 목적으로 비상계엄 선포 표지를 사용함으로써 작성일을 소급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 알려지면 논란이 되리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피고인은 윤석열, 김용현, 강의구와 순차적 안목적으로 공모하여 각각 자신의 직위에 해당하는 서명렬을 서명함으로써 공동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하였고, 피고인에게 허위공문서라는 인식과 이를 행사할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혐의는 무죄입니다.
관련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윤석열, 강의구, 김용현과 공모하여 후일로 작성한 공문서인 윤석열이 서명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그 무렵 대통령 비서실 부속실에 보관하는 방법으로 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서의 행사란 위조된 문서를 진정한 문서인 것처럼 그 문서의 효용 방법에 따라 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강의구는 피고인, 김용현, 윤석열로부터 차례로 서명을 받은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관련 절차에 따라 문서관리대장에 철하는 등으로 비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 서랍에 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강의구가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그 효용 방법에 따라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합니다.
공용서류 손상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공용서류 손상 혐의는 유죄로 인정이 됩니다. 관련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2024년 12월 8일 강의구에게 전화하여 사후의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으니 내가 서명한 것을 없던 것으로 하자는 취지로 말하면서 후일로 작성된 윤석열이 서명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폐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윤석열은 2024년 12월 10일 서울 용산구 소재 대통령 관저에서 강의구로부터 위와 같은 피고인의 말을 보고받고 강의구에게 총리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는 취지로 말하여 그 문서를 폐기할 것을 승인하였으며, 이에 강의구는 그 무렵 위와 같은 피고인의 요청과 윤석열의 승인을 받아 대통령 비서실 부속실에 보관하고 있던 그 문서를 세단기로 넣어 파쇄하는 방법으로 폐기함으로써, 피고인은 강의구, 윤석열과 순차 공모하여 무단으로 대통령 기록물인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손상함과 동시에 공무소인 대통령실에서 사용하는 서류인 같은 문서를 손상하였다는 겁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자신이 서명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추후 윤석열이 서명할 것임을 알지 못하였고 이를 예상할 수도 없었으며, 피고인은 그 문서가 추후 김용현과 윤석열의 서명을 거쳐 완성된다는 것도 알지 못하였고, 피고인은 강의구에게 자신이 서명한 부분 폐기를 요청하였을 뿐 문서 전체를 파쇄를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에게 그 문서가 대통령 기록물 또는 공용 서류이거나 이를 폐기 또는 손상한다는 고의가 없었다고 다투고 있습니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는 대통령 기록물 및 공용 서류에 해당한다고 인정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는 경우 문서로서 하여야 하고, 그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인 국방부 장관이 부서하여야 합니다.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는 대통령이 직무 수행인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기록물에 해당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하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문서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하고 윤석열이 서명하는 것은 결재권자의 결재에 해당하므로, 이로써 공문서로 성립하고 그에 따라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공문서로 성립되어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되었고, 대통령실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보관되어 있었던 이상 정식 절차를 밟아 접수, 편철되었는지 등과 관계없이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에게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대통령 기록물 및 공문서 서류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이를 손상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 자신이 국무총리 서명란에 서명한 후 윤석열과 김용현이 각각 그들 지휘에 해당하는 서명란에 서명함으로써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대통령 기록물이자 공문서 서류로 성립하려는 사정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강의구 등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사용하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한 논란을 우려하여 검은색 폐기를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서명한 부분을 특정하지 않은 채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의 폐기를 요구하였고, 달리 피고인이 강의구에게 대통령기록물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를 거쳐 폐기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볼 자료도 없습니다. 위정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됩니다.
위증
위증 공소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고,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문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헌법재판소에서 기억하는 바에 따라 진술하였으므로 위증이 아니라고 다투고 있습니다.
먼저 피고인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은 기억에 반한 진술이라고 인정이 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2024년 12월 3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과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을 교부받았고, 그중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은 상의 안주머니에, 나머지는 하의 뒷주머니에 넣고 대접견실을 떠났습니다. 피고인은 그다음 날 대접견실로 돌아올 때에는 하의 뒷주머니에 문건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대통령실에서 나와 국무총리 집무실에 들렀을 때 그러한 문건을 꺼내 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은 국무총리 집무실에 문건을 꺼내 놓고 며칠 뒤에 조태열이 받은 재외공관 관련 지상 문건 등을 살펴보았음에도 특별한 내용이 아니어서 폐기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무총리 비서실 공보실장 김수혜의 진술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은 하의 뒷주머니와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 가져간 문건을 단순히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문서 세절기에 넣어서 폐기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 가지고 나와 별도의 방법으로 폐기하거나 또는 아직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피고인은 국무총리 집무실에 들러 자신이 받은 문건을 꺼내 놓고 며칠 뒤에 문건을 살펴보아 특별한 내용인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외부로 가지고 나와 그 폐기 또는 보관 여부를 결정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나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하였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비상계엄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많은 자료들을 보며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였기에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기 어려웠고, 일부 기억은 혼재되었기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형사재판소에서 증언하는 것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피고인이 그 당시 상황을 모두 기억하며 진술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등으로 진술을 유보하지 않은 채 단정적으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여기에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등 제반 사정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이 불과 약 3개월 만에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 비상계엄 선포문을 받은 기억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주장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이 헌법재판소에서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문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도 기억에 반하는 진술이라고 인정됩니다. 피고인은 김용현이 2024년 12월 3일 22시 16분경 강의실을 통해 복사한 비상계엄 선포문을 피고인 이상민, 송미령 등에게 나누어 주는 것과 이상민이 같은 날 22시 43분경 대접견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비상계엄 선포문 등 문건을 한데 모아두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피고인은 대접견실에서 이상민과 대화를 마친 후 그 문건 더미를 하의 뒷주머니에 집어넣어 가지고 나왔고, 별도의 방법으로 폐기하였거나 아직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등으로 진술을 유보하지 않았을 때 단정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식으로 진술하였습니다. 여기에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학력, 경력 등 재반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불과 3개월 만에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비상계엄 선포문을 나누어 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였다는 식의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양형 설명
유무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양형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법원 양형 기준과 관련하여 내란 중요 임무 종사죄와 대통령 기록물 관련한 법률 위반죄에 대하여는 양형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양형 기준이 설정된 범죄와 그렇지 않은 범죄 사이의 경합범 범위에 관하여는 그 하한만을 양형 기준이 설정된 범죄의 양형 기준상 형량 범위의 하한에 따르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양형 기준은 이 사건 양형에 중요한 영향이 없습니다.
양형 사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1970년 6월경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래 약 50년 동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국무총리 등으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훈장과 포장을 받았습니다. 피고인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관하여 사전에 모의하거나 실행 행위를 지휘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고 볼 자료는 없습니다.
피고인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가 의결되자 이 사건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한 국무회를 소집 주재하였고, 그에 따라 비상계엄이 약 6시간 만에 해제되었습니다. 피고인은 현재 만 79세의 고령임에도 벌금형을 포함하여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습니다. 피고인은 최근에 이르러 경도 인지 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아 그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고, 피고인의 배우자는 독립적인 거동이 어려워 피고인의 돌봄과 간호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관련 자료가 재판부에 제출된 바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있더라도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엄한 처벌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윤석열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에 근거하여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의회, 정당 제도 등을 부인하는 내용의 위헌, 위법, 오판 포고령을 발령하며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거나 압수 수색한 행위는 앞서 본 바와 같이 형법 87조에서 정하는 내란 행위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정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 쿠데타라고도 불립니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친위 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하여 권력자는 독재자가 되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와 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과 같은 전쟁이나 정치 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되는 점에서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는 시도가 있고, 이미 유효한 구제 수단이 남아있지 않는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논의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 없어 위헌, 위법한 주장에 불과한 계몽적 경험, 잠정적 경험, 경고성 경험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지난 2025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지방법원 폭동 사건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선거 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와 같이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그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위로부터의 내란에 가담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존 내란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와 12.3 내란이 발생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에 따라 국제 무역과 국제 정치 등에 있어서 그 위상도 기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인해 생긴 경제적, 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군인에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란 국민의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입니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12·3 내란 가담자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피해 발생이 경미하였다거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는 사정을 깊이 고려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이 발생하면, 이로 인하여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 피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것은 분명하고, 혹시라도 내란이 성공하여 국민적 합의로 성립한 현재의 헌법 질서가 폭력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면, 이를 복원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내란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란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피고인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합당한 책임을 부여 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대한민국은 자칫하면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유린당했던 어두운 과거로 회귀하여 독재정치라는 수렁에서 장기간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될 수 있었고, 국민은 씻을 수 없는 상실감과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12.3 내란의 진실을 밝히고 그의 합당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후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이 사건 비상계엄 관련 문구를 은닉하고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였다가 폐기하였으며, 헌법재판소에서 위증하였습니다. 피고인 재판 과정에서도 허위로 진술을 번복하고, 대통령실 CCTV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벗어나고자 할 뿐입니다. 피고인이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 행위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절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처와 갈등이 쉽사리 봉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피고인 제2회 공판기일에서 12·3 내란에 관하여 여러 가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여 공개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만 진술하였다가, 이 법원의 요구에 따라 내란 중요 임무 종사 공소사실이 추가되고 대통령실 CCTV 영상 재생 및 증인 신문 등 증거 조사를 거쳐 자신의 범죄 사실이 탄로 나 형사 처벌의 기로에 서자 마지못해 최후 진술에 이르러서야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에 대해 가슴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지만,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달리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국가와 국민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하였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습니다. 이러한 점과 그 밖의 양형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합니다.
주문
피고인을 징역 23년에 처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의 점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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