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에 새울 3·4호기 원전이 건설 중이다. 새울 3호기는 지난달 말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운영허가를 받았고, 새울 4호기는 올해 말∼내년 초 준공이 목표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국민 다수가 미래 에너지 정책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가장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신규 원전(핵발전) 건설에는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이처럼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동시에 늘리자’는 식의 결론이 뻔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데 대해, 안전사고 및 핵폐기물 문제 등 미래세대 부담이 큰 신규 원전 건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형식적인 공론화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는 21일 두 기관(한국갤럽·리얼미터)이 각각 1500여명 대상으로 실시한 ‘미래 에너지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포함된 신규 원전(대형 원전 2기, 소형모듈원전 1기) 건설 계획을 계속 추진할지를 두고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두 차례 정책토론회를 연 데 이어 실시한 여론조사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앞으로 ‘확대 필요한 발전원’으로 재생에너지(한국갤럽 48.9%, 리얼미터 43.1%)를 가장 많이 꼽았다.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는 ‘친환경’(한국갤럽 32.4%, 리얼미터 33.4%), ‘미래세대’(한국갤럽 25.6%, 리얼미터 20.1%), ‘안정적’(한국갤럽 15.9%, 리얼미터 22.1%) 등이 꼽혔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가장 선호하는 여론이 높은데도,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80%대에 달할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89.5%, 리얼미터 조사에선 82%의 응답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자력 발전은 안전하다’는 의견도 60%대(한국갤럽 60.1%, 리얼미터 60.5%)로 나타났다. 11차 전기본에 포함된 신규 원전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도 60%대(한국갤럽 69.6%, 리얼미터 61.9%)로 높게 나타났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1차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
전날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압도적 원전 찬성 여론”을 언급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사실상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연이틀 내비쳤다. 이날 이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최종 결정이 남았으니 공론화도 거치고 의견 수렴도 하고 논쟁도 열어놓고 하자”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면서도, “미래 엄청난 에너지 수요가 있는데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문제가 있다”, “국가 계획도 확정됐는데 정권 바뀐다고 마구 뒤집으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서 경영 주체의 판단에 장애를 주는 측면이 있다”, “국제적으로 원전 수출이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고, 시장도 엄청나게 사실 늘어나고 있다”는 등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발언을 주로 내놨다. “이것(신규 원전 건설) 때문에 불편하거나 불만 있는 국민들, 특히 원천적 입장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며 “그 점도 고려해야겠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정부가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형식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신규 원전이 실제로 필요한지 과학적·기술적 검증은 하지 않고 국민 여론 뒤에 숨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정부가 진짜 미래세대를 위한다면 원전 30기(건설 중 포함)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신규 2기를 더 지을 필요가 있는지, 짓는다면 해당 원전을 어디에 둘지, 늘어나는 핵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할지를 먼저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한다”면서 “이런 부분을 모두 무시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인기투표를 하는 식으로 여론조사 결과 뒤에 숨는 정책 추진은 미래 부담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결과가 이미 예측 가능할 정도로 무의미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정부 기관, 환경단체 등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재생에너지 선호도가 가장 높다’, ‘인공지능 시대 전력 수급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 등의 여론은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이 지난해 6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조사 결과에선 응답자 92.6%가 재생에너지의 전반적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2024년 ‘에너지 국민인식조사’에선 81.9%가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현우 탈성과대안연구소장은 “앞서 두 차례 형식적인 토론회와 답이 정해진 여론조사 절차로 신규 원전 건설을 합리화하려는 계획을 국민 숙의를 모은 공론화로 포장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여론조사는 공론화 절차 중 하나로, 앞으로 전문가 의견 수렴 등도 거친 뒤 신규 원전 건설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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