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밀어붙이는 도발적 언사를 이어가면서 유럽과의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격한 성토를 쏟아내고 덴마크는 미국의 무력 개입까지 고려한 대비 태세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이 대서양 동맹의 갈등 국면을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는 결정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나토와 우리가 모두 매우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어디까지 갈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린란드 병합이 “국가 안보는 물론 세계 안보를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도 재차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그린란드 사안을 논의하자는 취지로 보낸 문자메시지를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외교 관례를 무시한 채 정상 간 비공개 소통마저 공개한 것을 두고 이들의 외교적 노력을 조롱하는 동시에 위협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집무실에 유럽 정상들을 앉혀놓고 그린란드·캐나다·베네수엘라 땅을 성조기로 뒤덮은 지도를 설명하는 듯한 가짜 이미지 등을 보란 듯이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합성 이미지. 백악관 집무실에서 유럽 정상들을 앞에 두고 그린란드·캐나다·베네수엘라 땅을 성조기로 뒤덮은 지도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트루스소셜 계정 갈무리 |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과 다보스 포럼에서 회담하기 불과 며칠 전에 내놓은 호전적 발언과 위협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을 향한 전례 없는 도발”이라며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끌어내고 더욱 대담하진 트럼프 대통령은 80년 가까이 서구 연합 전선의 중심이었던 외교 동맹(나토)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정상들은 전날 시작된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욕을 정면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가 “무역협정을 통해 최대한의 양보를 요구하고 노골적으로 유럽을 약화·종속시키려한다”며 “용납할 수 없는 새 관세가 끝없이 쌓여가며 영토 주권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법이 짓밟혀 가장 강한 자의 법만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제국주의적 야망이 다시 고개를 드는 세상”이라며 “우리는 협박보단 존중을, 폭력보단 법치를 원한다”고도 비판 강도를 높였다.
바르트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미국의) 비참한 노예가 되는 것과 행복한 신하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유럽이) 지금 물러서면 존엄을 잃게 될 것”이라며 “(미국·유럽 간) 동맹을 지켜낼 책임은 미 대통령에게 있다. 괴물이 될지 말지는 그에게 달렸다”고 했다. 미국의 오랜 핵심 우방국인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에 맞서 그린란드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약속했다.
그동안 신중한 대응을 고수해온 유럽 국가들이 사뭇 날 선 비판을 쏟아낸 것은 ‘더는 트럼프 대통령을 참아줄 수 없다’는 유럽 내 강경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프랑스에 이어 독일도 22일 유럽연합(EU) 긴급 정상회의에서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을 EU 집행위원회에 요청할 것이라며, 유럽의 강경 보복 채비가 빨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대해 광범위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 ACI는 발동되면 미 거대 기술기업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ACI를 발동하려면 EU 이사회 소속국 최소 15곳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이와 별도로 미국에 930억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 선제적 부과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등 다보스 포럼 상황에 따라 유럽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다보스로 향하는 길에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과 만나 그린란드 사안의 합의점을 찾을지, 갈등을 확전 양상으로 끌고 갈지는 다보스 포럼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주목받고 있다. 21일 특별연설을 시작으로 다보스 포럼 행사 일정을 소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보스로 향하던 중 전용기 전기 문제로 회항해 항공기를 바꿔 타고 다시 출발했다.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이날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그린란드를 차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하면서도,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사시 주민들 일상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지역 당구구 대표가 참여하는 전담 대응팀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린란드 정부는 주민들에게 가정 내 최소 닷새 치 식량을 비축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긴 새 지침을 배포하는 방안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덴마크 연금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약 1억달러(약 1470억원) 규모의 미 국채 보유분을 이달 말까지 모두 처분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카데미커펜션은 다만 미 정부 재정의 취약성을 고려했을 뿐,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에서 비롯된 정치적 판단이 직접적인 처분 원인은 아니라고 했다.
☞ ‘그린란드 야욕’ 트럼프 “모두에게 매우 좋은 일 일어날 것”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2107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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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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