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칼리드 아부 자라드가 조카 샤자 아부 자라드의 주검을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
가자지구에서 추위와 구호물자 부족으로 생후 3개월된 영아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가운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을 지원하는 유엔 기구 건물을 철거했다. 가자지구 평화계획 추진이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움직임에 밀려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이피(AP) 통신 보도를 보면, 20일(현지시각) 아침 가자지구 가자시티 인근 다라지에 있는 난민 캠프 천막에서 생후 3개월된 여아 샤자 아부 자라드가 숨진 채 발견됐다. 원인은 저체온증이었다. 모하메드 아부 자라드 부부와 8남매는 2023년 전쟁 발발 이후 천막에서 살아왔다. 샤자는 지난 주말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생후 27일 된 신생아에 이어 가자지구에서 이번 겨울에 추위로 사망한 9번째 어린이다. 지난해 10월 가자전쟁 휴전 이후 이스라엘의 공습과 질병 등으로 어린이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가자지구의 피난민들은 이번 겨울 잦은 폭풍우와 추위로 고통받고 있다. 여전한 이스라엘의 구호물자 제한에 침구과 불을 피울 땔감이나 석유 등이 부족하다. 2023년 가자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전력 공급을 끊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가자지구의 최근의 매서운 추위와 폭우는 생존에 근본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20일(현지시각)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생후 3개월 샤자 아부 자라드의 가족들이 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샤자의 어머니 히바(30)가 샤자의 쌍둥이 남매 나다를 안고 있다. AFP 연합뉴스 |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휴전 이후 첫 강제 이주 명령을 내렸다. 로이터 통신 보도를 보면, 19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칸 유니스 동쪽 바니 수하일라 마을에 “긴급 알림: 이 지역은 이스라엘군 통제하에 있다. 즉시 대피하라”라고 쓰인 전단을 살포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정부는 이번 대피 명령으로 3000명의 주민이 거주지를 이동한 것으로 파악했다. 주민 마흐무드는 “대피 경고로 있던 곳을 떠나서 서쪽으로 왔다”며 “지난달 이후 이스라엘 점령군은 휴전선을 네다섯 차례, 매번 150m씩 확장해서 팔레스타인 관리 지역을 잠식해 들어왔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단 살포는 인정했지만, 휴전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었다고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보도했다.
이날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 있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시설을 철거했다. 이스라엘은 이 기구의 일부 팔레스타인 직원이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입에 동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이 기구를 퇴출하는 절차를 밟아왔다. 지난해 10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이 이 단체의 하마스 연계설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이 단체와 협력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따르지 않았다. 기구는 지난 9일 튀르키예에 새 사무실을 개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1949년 설립된 유엔 산하 기구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에서 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은 즉시 파괴를 중단해야 하며, 건물을 복원하고 기구의 재산을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2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정부가 동예루살렘에 있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의 본부 건물을 파괴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종전과 가자전쟁 휴전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유럽과 그린란드 문제로 대립하면서 가자지구 평화계획 진전에 차질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가 가자지구 평화정착을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BoP)를 다른 국제 분쟁 문제도 다루는 유엔을 대체할 국제기구로 확대하려 하면서, 정작 가자지구 문제는 소홀하게 될 수 있단 것이다. 에이피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은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마저 소외시킬 정도의 위협”이라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전쟁을 멈추고, 가자지구에서 휴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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