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단가 하락·직구 활성화에 설 곳 잃은 면세점, “단순 가격 할인 대신 ‘핀셋 마케팅’과 ‘특화 상품’이 살길"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 롯데면세점과 현대면세점 두 곳만이 참여하며 경쟁없는 입성이 결정됐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물론 설명회에 참여했던 글로벌 면세 1위 기업 아볼타도 입찰을 포기한 결과다. 한 때 연간 3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안기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 받던 인천공항이 기피 지역으로 전락하면서, 면세 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표면화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전일 마감된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DF1·DF2 구역 신규 운영사업자 입찰에 롯데와 현대면세점 두 곳 만이 참여했다. 신라면세점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신세계면세점도 응찰 서류를 제출했다가 막판 철회를 결정했다. 아볼타는 물론,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은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업계는 이번 흥행 참패의 원인은 인천공항의 기형적인 임대료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공항 임대료는 공항 이용객 수에 객당 임대료를 곱해 산정된다. 여객 수가 늘어나면 임대료는 치솟지만 정작 여행객 1인당 구매액은 줄어드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의 임대료는 기존보다 5.9~11.1% 인하됐음에도 수익성을 보장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이휘영 인하공전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이 온라인 및 비대면 쇼핑에 익숙해지면서 공항 오프라인 매장의 구매 매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공항공사는 여객이 늘면 매출도 늘 것이라 낙관하지만, 사업자들은 객단가 하락으로 인해 팔아도 임대료 내기 벅찬 구조적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이 괴리가 입찰 흥행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업체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공항 면세점이 가지는 상징성에 있다. 인천공항과 같은 대규모 국제공항 면세점의 운영권을 가지는 것 만으로도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구매 우선권은 물론, 새로운 시장에 진출에 유리한 강력한 레퍼런스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한 면세점 관계자는 "인천공항은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공항으로, 브랜드가 입점하면 거대한 광고판 역할을 한다"며 "공항 매장이 있어야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상력을 높이거나 상품 바잉파워를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쟁사들이 과열 경쟁을 피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예상돼 적정 수준의 입찰가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수익성이 확보된다면 안 들어갈 이유가 없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공항 면세점이 이번 흥행 실패를 위기로 받아들이고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임대료 구조를 가진 공항은 없을 것"이라며 "소비 트렌드 변화로 인한 매출 부진과 고환율이란 이중고인 상황에서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 조정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면세업계에도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인천공항 면세점이 경쟁력을 찾기 위해선 공항만이 가지는 킬러 콘텐츠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혜진 시티면세점 대표는 "천편일률적인 제품으로 가격 경쟁만 하거나 문만 열어두면 팔리던 시대는 지났다"며 "일본 공항의 도쿄 바나나처럼 한국 공항에서만 살 수 있는 독자적인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휘영 교수 역시 "터미널별 이용객의 국적 분포와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해 선호 물품을 배치하는 '핀셋 마케팅(세그멘테이션)'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미 온라인 최저가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유통 비용을 최소화해 이커머스보다도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