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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감기걸린 날…영하 20도, 거리서 버티는 사람들[르포]

이데일리 석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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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감기걸린 날…영하 20도, 거리서 버티는 사람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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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배달기사·환경미화원 노동현장 가보니
폐기 늘고 손은 굳고…혹한 속 상인들
핫팩 7장은 기본, 배달기사들 '완전무장'
"새벽 바람, 피부가 따가울 정도"…환경미화원도 울상
[이데일리 석지헌 정윤지 김현재 기자] “과일이 추워서 감기가 걸렸어요. 오늘은 쉴게요. 감기 나으면 다시 봐요~”

2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내 한 청과물 매장에 붙은 안내문.(사진=김현재 기자)

2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내 한 청과물 매장에 붙은 안내문.(사진=김현재 기자)


21일 오전 8시 30분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성대전통시장. 한 청과물 매장의 굳게 닫힌 셔터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곤두박질친 혹한의 날이었다. 평소라면 장사 준비로 활기가 넘쳤을 오전 시간이지만 이날 시장 골목은 잔뜩 웅크린 채 숨을 죽인 모습이었다.

외부 개방형 구조가 많은 전통시장 특성상 찬 공기는 그대로 시장 안 파고들었다.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상인들은 저마다 추위를 막기 위한 채비에 나서 있었다. 상점마다 겹겹이 비닐 천막을 둘러쳤고 켜놓은 온열 기기 앞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한 채소가게 진열대에는 채소가 동파를 막기 위해 사람이 덮어도 될 만큼의 두툼한 이불이 덮여 있었다.

이곳에서 호떡가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반죽을 떼어내던 손을 잠시 멈추고 입김을 불었다. 그는 “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하루 쉬었는데 나와 보니 오늘이 더 춥다”며 “이틀 연속 문을 닫을 수는 없어 이를 악물고 나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화재 걱정 때문에 난로는 멀리 둬야 하고, 칼바람은 그대로 들이치니 마스크와 귀마개로 온몸을 싸매고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같은 시각 마포구 망원시장도 추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닭을 파는 상인은 귀와 얼굴을 모두 덮는 털모자를 눌러쓰고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묵 꼬치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히터를 올려두고 바로 앞에서 꼬치를 꽂는 분식점 상인 모습도 눈에 띄었다.

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 분식점 상인이 혹한에 어묵꼬치가 얼지 않도록 온열기 앞에서 꼬치를 데우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사진=석지헌 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 분식점 상인이 혹한에 어묵꼬치가 얼지 않도록 온열기 앞에서 꼬치를 데우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사진=석지헌 기자)


반찬가게 직원 우모(25)씨는 12시간 근무를 앞두고 여러 겹의 옷을 껴입은 채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핫팩보다는 옷을 여러 겹 입는 게 낫다”며 “안쪽부터 반팔에 바람막이, 그 위에 경량 패딩, 외투까지 한 다섯 겹은 껴입었다”고 말했다.


혹한 추위로 얼어버린 음식을 보며 한숨을 쉬는 상인들도 많았다. 난로나 온열 기기로 데울 수 없는 나물과 반찬류, 두부와 묵 등은 한 번 얼어버리면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할 수밖에 없다. 두부를 파는 김모(57)씨는 “두꺼운 비닐로 덮어놔도 이렇게 꽁꽁 얼었다”이라며 “요즘처럼 추위가 길어지면 팔기도 전에 버리는 물량이 늘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구의 영등포전통시장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시장 입구 길목에서 옷 수선을 하는 70대 정모씨 옷가지와 박스로 만든 좁은 틈새에 몸을 구겨 넣은 채 휴대용 가스버너 불꽃에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 시장 입구라 바람골이 형성된 탓에 체감 추위는 더 매서웠다. 정 씨는 “불을 안 켜면 손이 굳어 바늘을 잡을 수가 없다”며 “매일 하던 일이니 나왔지만 이번 추위는 유독 길다니 걱정”이라고 했다.

시장 밖, 거리 자체가 일터인 노동자들에게 한파는 곧 고통이다. 영등포시장역 인근에서는 새벽 청소를 마친 환경미화원들이 잠시 몸을 녹이고 있었다. 환경미화원 정모씨는 “추위에 몸이 굼떠 작업이 더디다”며 “새벽 바람을 온몸으로 맞다 보면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오토바이 배달 기사 김모씨(41)는 “추위를 많이 타서 목 뒤와 몸, 다리, 발가락 쪽에 핫팩을 7장 정도 쓴다”며 “추위에 떨기 시작하면 일이 안 된다. 아무리 추워도 몸은 안 떨리게 완전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파는 거리의 노인들에게 가장 가혹했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폐지를 줍는 70대 최모씨는 이날도 어김없이 새벽 6시에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 최씨는 꽁꽁 언 손을 비비며 “남들 보기엔 고생스러워 보여도 일자리 없는 우리 같은 노인들에겐 이런 일도 참 소중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