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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난로도 하나 없이...'북극 한파' 속 극한의 상하차 [르포]

머니투데이 김서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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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난로도 하나 없이...'북극 한파' 속 극한의 상하차 [르포]

서울맑음 / -3.9 °
털조끼·귀마개 꽁꽁 싸맨 야간 택배기사들
새벽부터 모여든 일용직 건설근로자…"춥다고 쉴 수 없어"

경기 군포시 복합물류터미널 집하장에서 한 택배기사가 택배를 정렬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서현 기자.

경기 군포시 복합물류터미널 집하장에서 한 택배기사가 택배를 정렬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서현 기자.



"난로요? '불'은 여기서 금지 대상이에요. 핫팩과 겉옷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죠."

절기상 대한(大寒)인 지난 20일 저녁 7시. 경기 군포시 복합물류터미널에서 만난 택배기사 이모씨(51)는 털조끼에 귀마개, 장갑으로 꽁꽁 싸맨 채 이렇게 말했다. '큰 추위'라는 절기 뜻처럼 이날도 역대급 한파가 몰아쳤다.

저녁 7시는 업체로부터 온 택배 집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간이다. 이곳에 모인 20여명의 택배기사들은 연신 크고 작은 택배들을 트럭에서 꺼내 날랐다. 몰아치는 강풍에도 몸을 움츠릴 시간도 없었다. 곳곳에선 "에헤이, 얜 아니잖아"라는 말소리만 이어졌다.

대형 트럭이 오가다 보니 상차장과 집하장은 바람을 막아주는 가벽 하나 없다. 지붕만 있을 뿐 야외나 다름없었다. 10분도 안 돼 손발이 얼어붙었다.

11년 동안 택배업을 했다는 이관우씨(49)는 "일을 하다 보면 제시간에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사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추위"라며 "택배를 나르다 보면 두 손이 묶이다 보니 흐르는 콧물을 닦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 군포시 복합물류터미널 상차장 모습. 택배 기사들은 가벽 없이 완전한 야외인 이곳에서 매일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사진=김서현 기자.

경기 군포시 복합물류터미널 상차장 모습. 택배 기사들은 가벽 없이 완전한 야외인 이곳에서 매일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사진=김서현 기자.



잠시 몸을 녹일 난로 등 온열기구도 없다. 해당 터미널에서는 2020년 큰 불이 나 22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했다. 사고 이후 터미널 내 온열 설비는 금지 대상이 됐다. 이날 집하장에 모인 택배기사들은 내의를 겹겹이 껴입고 털조끼와 열선이 들어간 신발 등으로 중무장했지만 한파를 이겨내긴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택배 기사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날은 화요일이다. 주말 사이 밀린 택배까지 인당 400개 정도가 몰려든다고 했다. 30대 남성 A씨는 "상차를 하는 아침에는 70명이 넘는 인원이 3~4시간씩 야외에 그대로 서서 택배를 분류하고 날라야 한다"며 "저녁이 되면 추위 때문에 몸이 덜덜 떨린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택배 일을 했다는 황모씨(66)는 "트럭에서 내린 택배를 집하장 안쪽으로 들여보낼 때 크기가 작은 택배가 레일 안쪽에 걸리면 레일이 잠깐 멈추게 되는데, 그 순간이 유일하게 숨을 돌릴 시간"이라며 "요즘 같은 한파에 강풍까지 불면 가벼운 택배 상자가 여기저기 날아가기도 해서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한파만큼 추운 건설 경기…"추워도 쉴 수 없어"

21일 새벽 5시쯤 서울 중랑구 면목역 광장 '새벽일자리 쉼터'에서 몸을 녹이는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사진=최문혁 기자.

21일 새벽 5시쯤 서울 중랑구 면목역 광장 '새벽일자리 쉼터'에서 몸을 녹이는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사진=최문혁 기자.



역대급 한파에도 새벽 광장에서 일을 구하는 이들의 하루는 예외 없이 시작됐다. 체감온도가 영하 19도(℃)까지 떨어진 21일 새벽 4시30분. 서울 중랑구 면목역 광장에는 주황색 천막이 설치됐다. 중랑구청이 건설 일용직 근로자를 위해 운영하는 '새벽일자리 쉼터'다. 쉼터를 관리하는 최낙봉씨(62)는 "새벽 5시부터 본격적으로 근로자들이 모이기 시작한다"며 "오늘은 날이 추워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벽 5시가 되자 근로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귀를 덮는 털모자와 넥워머 등 방한 도구로 무장한 이들은 추위를 피해 전기난로 앞에 모였다. 이들은 성인 남성 몸집만한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가방 안은 갈아입을 내의와 겨울용 작업복, 작업화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45년째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는 70대 남성 B씨는 "여름에는 거의 빈손으로 출근하지만 겨울에는 방한용품이 많아 짐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날 쉼터를 찾은 일용직 근로자 10여명은 60~70대들이다. B씨는 "요즘 건설 경기도 좋지 않아 일이 많이 없다"며 "날씨가 춥다고 쉬었다가는 일주일에 이틀도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파에 일 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지만 쉴 수 없는 이유"라며 웃었다.


이곳에서 만난 60대 남성 C씨는 답십리역에서 면목역 광장까지 심야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버스 배차 간격은 30분이다. C씨는 "대중교통이 많이 없는 시간이라 미리 나와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새벽 출근길이 가장 춥지만 추위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김서현 기자 ssn3592@mt.co.kr 최문혁 기자 cmh621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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