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 김호겸 기자]
해외 주식에 투자 중인 서학개미 자금이 올해 들어 250조원을 돌파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부는 자금 역외 유출을 막고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세제 혜택과 투자상품 규제 완화를 두 축으로 삼아 유턴 유도책을 강화하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와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서학개미의 자금 이탈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 속에 입법과 규제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직접 시장 달래기에 나선 것이 신호탄이 됐다. 앞서 지난 13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주요 증권사·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을 긴급 소집해 국내 주식시장 매력도 제고 방안을 논의하며 고배율 상품 도입 등 과감한 규제 완화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발맞춰 재정경제부는 지난 20일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도입 방안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및 농어촌특별세법 개정안을 이르면 2월 임시국회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로 돌아오는 자금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지원이다. 정부는 RIA를 신설해 투자자가 해외주식을 매도한 자금을 원화로 환전한 뒤 이 계좌를 통해 1년간 국내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경우 해외주식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기로 했다.
특히 조속한 자금 회귀를 유도하기 위해 복귀 시기에 따라 혜택을 차등화했다. 올해 1분기(1~3월) 내에 매도하고 돌아올 경우 양도세 전액(100%)이 면제돼 사실상 세금을 0원으로 만들어준다. 2분기 복귀 시에는 80%, 하반기에는 50%의 공제율이 적용되며 개인별 1인당 한도는 매도 금액 기준 5000만원이다. 다만 RIA 혜택을 받으면서 일반 계좌로 다시 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얌체 투자를 막기 위해 해외주식 순매수 비율만큼 소득공제 혜택을 차감하는 '체리피킹' 방지 조항도 포함된다.
정부는 이 외에도 오는 6~7월 출시 예정인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도 구체화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 펀드에 3년 이상 가입할 경우 투자금 3000만원까지는 40%의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배당소득에 대해서도 9% 분리과세를 적용해 세후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세제 혜택이 자금 유입을 유도하는 성격이라면 레버리지 규제 완화는 고위험·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을 선호하는 서학개미의 투자 성향을 겨냥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현재 2배로 묶여 있는 ETF 레버리지 한도를 확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개별 종목의 2배 추종 상품과 코스피, 코스닥 지수의 3배 추종 상품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는 서학개미들이 테슬라나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나스닥 지수를 3배 추종하는 'TQQQ' 등 고수익·고위험 상품에 매수세가 집중되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실제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705억 달러(약 251조 원)로, 불과 2주 만에 10조 원이 급증했다. 특히 최근에는 테슬라 외에도 알파벳(구글) 매수세가 강해졌고, 여전히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대책에도 시장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간 국내 증시는 레버리지와 인버스 상품의 배수 제한 등 촘촘한 규제로 인해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나 코스피 지수를 활용한 고배율 ETF가 도입될 경우 박스권에 갇힌 국내 증시에서 거래 대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2016년 파격적인 세제 혜택으로 해외 자산의 12.4%를 환류시킨 인도네시아의 '조세 사면' 성공 사례에 주목했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시 환류 비율을 국내 해외주식 자산 규모에 단순 대입하면 약 31조7000억원의 유입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며 "정책 시행 당시 인도네시아 증시와 통화 가치가 동반 상승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조치 역시 환율 안정과 자본시장에 분명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서학개미의 국내 복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세금이 아닌 기대 수익률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미국 빅테크의 성장성을 맛본 투자자들이 단지 한시적인 세제 혜택만으로 박스권에 갇힌 국내 증시로 회귀할지 미지수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세제 혜택과 레버리지 규제 완화라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로 서학개미 자금을 국내로 되돌릴지는 미지수"라며 "3배 레버리지 상품 투자 비중이 높지 않아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고 투자자들은 국경보다 수익률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국내 시장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아져야 실질적인 자금 유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미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고배율 ETF의 구조적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고 투자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합리적인 정보 제공과 위험관리 장치를 전제로 상품 선택권을 넓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결국 해외로 빠져나가는 투자 수요를 국내 제도권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김호겸 기자 hkkim823@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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