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투자·배급 담당…"영화계 어렵지만 제작 멈출 수 없어"
포즈 취하는 임선애·남궁선 감독, 김성현 CJ ENM 영화기획제작팀 PD |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30돌을 맞아 기획된 프로젝트다.
영상원 출신 30명의 감독이 만든 30편의 단편을 모았다. 각 단편 길이는 3분 남짓. 합쳐보니 장편영화 길이가 된 옴니버스 작품은 1막 '예열', 2막 '심연', 3막 '폭발' 등 3편으로 완성됐다. 영화는 지난 14일 1막을 시작으로 한 편씩 순차적으로 개봉한다. 다음 달 4일부터 합본이 5일간 스크린에 걸린다.
"영화 한 편 할 때 오래 걸리는데, 단편은 결과가 빨리 나오잖아요. 빠르게 함께 할 수 있는 축제 같은 분위기여서 재미있었어요."(임선애 감독)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는 게 보장된 일이 많지 않아요. 미술, 사운드 디자인도 직접 하면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어요. 굉장히 즐거웠습니다."(남궁선 감독)
지난 20일 서울 CJ ENM 센터에서 만난 임선애·남궁선 감독은 프로젝트 참여를 즐거운 기억으로 떠올렸다. 제작비와 기간 모두 빠듯했지만, 한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속 장면 |
프로젝트는 1995년 설립된 영상원 30돌을 기념해 30명의 감독이 각자 3분 분량의 단편을 만들자는 데서 출발했다. 한예종 영상원 출신이 의기투합해 만든 제작사 아토가 CJ ENM에 투자·배급을 제안했고 참여가 이뤄졌다. 지난해가 마침 CJ가 문화사업을 시작한 지 30년을 맞은 해라는 점도 의미를 더했다.
CJ ENM 김성현 PD는 "신진 크리에이터 발굴과 새로운 아이템 발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며 "이것을 발판으로 영상원과 협력할 기회가 될 것 같아 신인 발굴 취지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속 장면 |
지난해 6월 투자가 결정된 뒤 감독 섭외가 진행됐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 모임'의 후반 작업을 하던 임 감독과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 후반 작업을 마친 남궁 감독에게도 제안이 갔다.
"만약에 제가 놀고 있었으면 참여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직 스태프가 떠나지 않은 상태여서 도움을 요청했죠."(임 감독)
"항상 작업하고 싶은 갈증이 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남궁 감독)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속 장면 |
그렇게 해서 숫자 '30'과 '전조'(오멘·Omen)를 키워드로 하는 30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임 감독은 언어유희를 활용한 단편 '껌이지'(Come easy)를 제작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나 자기 존재가 '껌'처럼 느껴졌던 경험이 소재가 됐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30고'라는 글자는 이를 반영한다. 초고를 서른 번 고쳤다는 의미다.
"실제 아마 대부분 감독님이 그러실 거예요. 비공식적으로 30번 정도는 시나리오를 고쳐야 촬영에 들어가거든요.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조차 나한테도 껌 취급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단편에 녹아 있어요."
남궁 감독은 영화에 관해 얘기하는 '우리가 죽기 전에'를 만들었다. 극 중 인물들이 영화의 유용성과 '진짜 영화'가 무엇인지 논하는 내용이 리듬감 있게 펼쳐진다. 편집 프로그램 업체를 향한 비판도 담겨 있다.
"현대 영화 제작의 조건들에 대한 고민이 들어갔어요. 지금은 연출이 예술적인 설계가 사라지고 기능적으로 된 측면이 있어요. 단순한 콘텐츠가 됐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작업할 때 올 수 있는 '현타'(회의감)를 토론하는 거죠."
'껌이지'에는 배우 기주봉·전혜진, '우리가 죽기 전에'에는 최성은·신은수가 출연해 무게감을 더했다.
질문에 답하는 임선애 감독 |
30명의 생각과 고민이 녹아 있는 30편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소재는 영화다. 영화를 그만두려는 여자와 남자의 대화를 담은 정가영 감독의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감독과 배우의 삶을 그린 '소리 없이 빙긋이'(강동헌 감독) 등에서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다뤄진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영화제에서 '프로젝트 30'으로 공개된 옴니버스 작품은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로 제목을 바꿔 개봉했다.
영화를 다룬 단편에선 최근 한국 영화계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듯 비관적인 태도도 묻어났다. 이요섭 감독의 '미래 영화'는 "영화가 망한 걸까"라고 묻고, 김태엽 감독의 '30번 환생한 남자'에선 "한국에서 영화 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오세연 감독은 아예 영화의 장례식을 치른다.('어느 날 영화가 죽었습니다')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속 장면 |
2000년대부터 오랜 기간 활동해온 두 감독은 영화계가 어렵다는 데 생각을 같이하면서도, 새로운 시기가 올 거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임 감독은 "최근 기사를 보니 요즘 극장에 사람이 많이 없지만, 작은 예술 영화 극장은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문화가 돼 매진이 이뤄진다고 한다"며 "100년 넘은 한국 영화의 문화가 갑자기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운 시기를 잘 넘어가면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궁 감독도 "부산영화제도, CJ ENM도, 영상원도 작년에 30주년이었다"며 "30년의 한 사이클이 지났고 다음 세대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너지가 다른 곳에서 집결되고 있다고 느낀다. 저희 작품만 봐도 영화를 찍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들이 한 달 동안 30개를 만들 만큼의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질문에 답하는 남궁선 감독 |
임 감독은 "그냥 지나칠 법한 어떤 것을 발견해주는 영화"를, 남궁 감독은 "삶의 감각을 담고 그것에 균열을 내주는 영화를" 그만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극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쓸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저한테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 영화라는 매체에요. 제 몸이 성할 때까지 그만두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임 감독)
"영화 자체가 주는 경험과 재미가 크기 때문에 그만두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남궁 감독)
"영화는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어른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도 콘텐츠 제작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영화를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김성현 PD)
포즈 취하는 임선애·남궁선 감독, 김성현 CJ ENM 영화기획제작팀 PD |
encounter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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