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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해군력 약해서 어부 납북 못 막았단 정부 주장 타당성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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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해군력 약해서 어부 납북 못 막았단 정부 주장 타당성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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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시민모임이 2023년 11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삼거리에서 검찰총장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시민모임이 2023년 11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삼거리에서 검찰총장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납북귀환 어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처음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된 군사·안보 전문가가 당시 해상국방력이 약해 납북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정부 주장과 상반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동안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의학·환경 사건 등에서 활용됐는데, 군사·역사 전문가가 처음으로 과거사 사건 재판에 참여하게 됐다. 납북귀환 어부 사건은 조업 중 북한에 납치됐다 귀환한 뒤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 등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 대표적인 국가 인권침해 사례로 꼽힌다.



납북귀환 어부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민사2부(재판장 심영진)에서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한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가 원고인 납북귀환 어부 김춘삼씨 쪽에서 요청한 내용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9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재판 과정에서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거나 소송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당사자의 신청 등에 따라 법원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직접 의견을 듣는 제도다.



김춘삼씨는 1971년 동해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뒤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당시 김씨는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북한을 찬양한다는 진술을 강요당했다. 김씨 가족은 수사기관에 의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당하기도 했다. 김씨는 2023년 5월23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진실과거화해위원회는 같은달 10일 김씨를 포함해 1971년 납북된 어부들이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납북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불법 수사를 받은 뒤 처벌을 받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에 김씨와 그의 유족은 국가가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해 납북을 방치했고, 귀환 뒤에는 고문과 사찰 등 불법행위를 했다며 4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국가가 이들에게 각각 손해배상금 170여만원∼226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행위는 인정했지만, 국가가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도 정부 쪽은 국가 보호 의무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의 해상 국방력이 취약했고, 우리 군과 경찰은 이에 대응할 만한 함정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쪽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자, 원고 쪽은 재판부에 전문심리위원 참여를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해 11월13일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비확산정책 분야를 담당하는 등 20년 동안 국방대 군사전력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문장렬 전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원고 쪽은 문 전 교수에게 당시 한국과 북한의 해군 군사력을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와 어선 보호를 위해 필요했던 정부 조처, 해군력 열세로 납북을 막지 못했단 정부 주장에 대한 의견 등을 요청했다.



문 전 교수는 의견서에서 당시 해군력이 열세해 납북을 막지 못했다는 정부 주장의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1954년부터 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과 동맹관계였기 때문에 한미연합 해군력을 북한과 비교해야 하며, 그 경우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문 전 교수는 “(당시) 세계적 수준의 미7함대 전력이 일본에 기지를 두고 작전을 수행했다”는 등의 사실을 들며 “당시 전쟁이 재발했으면 한미연합 해군력이 북한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문 전 교수는 “어선 납북은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 도발행위이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한미 간에 협의하고 미국의 가용한 조치 및 지원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의견서에서 밝혔다.



문 전 교수는 본질적으로 당시 한국해군이 가진 함정으로 어선 피랍을 막고 어선을 구출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 전 교수는 국방부에서 펴낸 책 ‘국방 100년의 역사 1919~2018’을 인용하며 “1967년부터 한국해군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지적 해상전에 대응할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이어 “그 시기에 해상훈련도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1971년 한국해군이 함정 1700여척을 이용해 해상훈련을 2300일 넘게 실시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더해 문 전 교수는 한국해군이 납북 어선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례도 있다며 해군력이 부족해 납북을 막지 못했단 정부 주장의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문 전 교수는 1965년 서해 강화도 인근에서 한국 어선 등 5척이 북한 해군함에 의해 납북됐다가 해군이 공군력의 지원을 받으며 북한 함정을 추격해 구출한 사례를 들었다.



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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