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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이나 싼데, 라테 맛은 같고”…수입 멸균우유의 역습 ’40배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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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이나 싼데, 라테 맛은 같고”…수입 멸균우유의 역습 ’40배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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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월 1일 유럽 8개국에 예고한 관세 부과 않겠다"
7월이면 관세 전면 철폐 “우유도 수입산으로 바뀌나요”
마트 냉장고 앞에서 시작된 가격 전쟁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 우유 매대. 냉장고 문을 연 소비자들의 손이 잠시 멈춘다. 국산 냉장우유 옆에 나란히 놓인 수입 멸균우유 때문이다. 상온 보관이 가능하다는 안내 문구, 그리고 눈에 띄게 낮은 가격표가 시선을 붙잡는다.

관세 인하 이후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관세 인하 이후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집에서 그냥 마시기보다는 커피나 베이킹용이에요. 솔직히 가격 차이가 크잖아요.”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던 30대 직장인의 말이다. 이런 선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관세 인하를 계기로 수입 멸균우유가 빠르게 국내 시장으로 파고들고 있다.

◆관세 내려가자 수입 우유 문턱도 낮아졌다

21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부터 미국산 우유 관세는 사실상 사라졌다. 유럽산 우유 역시 단계적 인하를 거쳐 오는 7월이면 관세가 전면 철폐된다. 한때 평균 30%를 훌쩍 넘던 유제품 관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가격 차이는 이미 체감된다. 폴란드산 멸균우유 1L 제품은 온라인몰 기준 1900원대에 판매된다. 같은 용량의 국산 냉장우유보다 1000원가량 저렴하다. 업계에서는 관세가 완전히 없어질 경우, 수입 멸균우유 가격이 리터당 수십 원 더 내려갈 수 있다고 본다.


◆“맛 차이 거의 없다”…카페·베이커리가 먼저 움직였다

멸균우유는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소비기한이 길다. 재고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자영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실제로 개인 카페와 베이커리에서는 이미 수입 멸균우유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라떼나 베이킹에 쓰면 손님이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며 “원가 부담이 큰 상황에서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영양 측면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는 평가다. 멸균우유와 냉장우유 모두 초고온살균 방식을 거친다. 일부 소비자들은 그대로 마실 경우 향 차이를 언급하지만, 가공용으로는 체감이 크지 않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반응이다.

◆숫자가 말한다…8년만에 40배 늘어난 수입량

수입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관세청 집계를 보면 멸균우유 수입량은 2016년 1200여 톤에서 지난해 4만8000톤을 넘어섰다. 8년 만에 약 40배 불어난 수치다. 지난해 3분기에는 분기 기준 최대 물량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국내 우유업계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로는 고환율이 꼽힌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물류비 부담이 관세 인하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면서, 수입 우유 가격이 급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율이 안정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원유 생산 비용 자체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 원유 가격은 리터당 1200원대를 웃도는 반면, 주요 수출국은 그 절반 수준이다. 구조적인 경쟁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줄어드는 소비, 늘어나는 선택지…국산 우유의 고민

여기에 소비 환경도 녹록지 않다. 저출산·고령화로 흰 우유 소비는 정체 혹은 감소 흐름이다. 학교 급식 물량은 줄고, 두유와 식물성 음료 같은 대체재는 늘고 있다.

국내 유업계는 프리미엄 제품, 기능성 우유, 성인 영양식으로 활로를 찾고 있지만, 소비자 선택은 점점 ‘가성비’로 기울고 있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수입 멸균우유를 고른 이유로 ‘보관이 편해서’와 ‘가격이 싸서’가 가장 많이 꼽혔다.

보관이 쉽고 가격이 저렴한 수입 멸균우유가 카페·베이커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보관이 쉽고 가격이 저렴한 수입 멸균우유가 카페·베이커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금은 환율 덕에 숨 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조건이 바뀌면 매대 구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우유 시장도 본격적인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마트 냉장고 앞에서 시작된 선택의 변화. 수입 우유의 공세는 이제 가격을 넘어, 국내 우유 산업의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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