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이탈리아 정상회담의 진정한 의미 —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오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선물한 삼성 갤럭시 Z플립7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서울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정상회담은 외형상으로는 전통적인 외교 의제를 다뤘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산업과 문화, 그리고 기질의 공명이라는 흥미로운 결을 품고 있다. 이번 회담은 단순한 양국 협력의 재확인을 넘어, 한국과 이탈리아가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전략 산업, 특히 반도체 협력에 대한 공감대다. 반도체는 이제 더 이상 개별 국가의 산업 자산이 아니다. 지정학과 공급망, 기술 주권이 얽힌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메모리와 제조 공정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고, 이탈리아는 장비·소재·정밀 기계 분야에서 오랜 기술 축적을 이뤄온 나라다. 양국이 반도체 협력을 논의했다는 것은 단순한 산업 협약을 넘어, 각자의 비교우위를 결합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기술 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말로만 ‘공급망 안정’을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설계·제조·장비·소재를 입체적으로 엮는 나라만이 살아남는다.
이번 회담에서 문화와 예술, 특히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함께 논의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K-팝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지만, 이제 다음 단계의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그리고 서구 문화권 안에서 소모되지 않고 어떻게 재해석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탈리아는 오페라와 클래식, 영화와 패션을 통해 자국 문화를 ‘보편 언어’로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다. 한국 대중음악과 콘텐츠가 이탈리아의 문화 산업 경험과 만난다면, 이는 단순한 수출을 넘어 구조적 진화를 의미할 수 있다. K-팝이 서구형 시스템과 결합해 새로운 장르와 제작 방식으로 확장되는 길, 그 가능성이 이번 정상회담의 문화적 대화 속에 조용히 스며 있었다.
최근 이탈리아의 유력 영화사 경영진이 한국을 방문해 공동 제작과 투자 가능성을 타진한 일도 상징적이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 역량과 이탈리아의 스토리텔링 전통, 미학적 자산이 결합한다면 이는 일회성 합작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문화는 감성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냉정한 산업이다. 정상회담에서 문화 협력이 언급됐다는 사실은 양국 모두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픽=노트북LM} |
한국과 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끝에 서 있지만, 기질 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두 나라 모두 노래를 사랑하고, 식탁에서 대화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여 인간관계를 다진다. 감정을 숨기기보다 표현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익숙한 민족이다. 냉철한 계산 속에서도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 이것이 두 나라가 공유하는 문화적 DNA다.
외교는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일이다. 제도와 조약은 그 뒤를 따른다. 이번 한·이탈리아 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이유는, 산업과 안보라는 무거운 의제 위에 문화와 기질이라는 인간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얹혔기 때문이다.
반도체 협력은 머리의 영역이고, 문화 예술은 가슴의 영역이다. 이 둘이 함께 논의됐다는 사실은 양국 관계가 단기 성과를 넘어 장기적 신뢰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과 서가 마주 앉았을 때, 가장 먼저 말을 건 것은 노래였고, 가장 진지하게 논의된 것은 반도체였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외교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기술로 먹고살되, 문화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 한국과 이탈리아의 이번 만남은 그런 점에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은, 오히려 한발 앞선 정상외교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브라함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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