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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연기금, 1500억원 규모 美 국채 전량 매각... 금융권 ‘탈미국’ 움직임

조선비즈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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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연기금, 1500억원 규모 美 국채 전량 매각... 금융권 ‘탈미국’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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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월 1일 유럽 8개국에 예고한 관세 부과 않겠다"
총 39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영 중인 덴마크 연기금이 보유했던 미국 국채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거듭 밝히며 외교적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다.

표면적 이유는 ‘미국 재정 건전성 악화’지만, 이면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외교 행보에 대한 반감도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럽이 보유한 막대한 미 국채 물량이 시장에 쏟아질 경우 발생할 파장에 금융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일 그린란드 누크의 한 카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는 TV 방송이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그린란드 누크의 한 카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는 TV 방송이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외신을 종합하면 20일(현지시각) 덴마크 연금기금 아카데미커펜션(AkademikerPension)은 이달 말까지 약 1억 달러(약 1480억원) 규모의 미 국채를 전량 처분한다고 밝혔다. 이 기금은 회원 약 17만 명을 보유하고, 총 260억 달러(약 38조 6000억 원) 자산을 운용하는 덴마크 주요 기관투자자다. 안데르스 셸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의 대규모 재정 적자와 부채 부담이 심각해 더 이상 국채를 보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유동성 및 리스크 관리를 위해 미 국채 대신 달러 현금이나 단기 기관채 등 대안을 찾기로 했다”고 했다.

셸데 CIO는 이번 결정이 그린란드 갈등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면서도 “양국 간 균열이 쉽게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고려가 전혀 없지 않았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실제 덴마크 내 ‘탈(脫)미국’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레러네스펜션(Lærernes Pension)도 미국 부채 지속 가능성과 연준의 독립성 침해 우려를 이유로 미 국채 비중을 줄였다. PFA연금 역시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보유량을 축소했다. 무디스가 지난 5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하향 조정하는 등 재정 악화 우려가 커진 점도 명분이 됐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시장은 덴마크를 필두로 한 미국 국채 매각 움직임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은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약 3조5000억 달러 규모(약 5180조 원)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매각에 나선다면 미 국채 금리가 급등(가격 하락)하고 달러 가치가 흔들리는 ‘자본 전쟁(capital war)’이 발발할 수 있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는 이날 다보스포럼에서 “무역 전쟁 너머에는 자본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며 “사람들이 미 국채를 사고 싶어 하지 않을 가능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유럽발 매도세가 거세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QE)를 통해 국채를 사들여야 한다. 이는 이미 인플레이션과 부채로 허덕이는 미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규모 투매가 당장 일어날 가능성을 낮게 봤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를 인용해 “유럽이 보유한 미 국채 대부분은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 투자자가 들고 있어, 정부가 주도해 조직적으로 매각하자고 유도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중국 등 미국 국채 주요 보유국과 달리 민간 자본을 정치적 목적으로 통제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역시 다보스에서 “유럽이 미 국채를 버릴 것이란 이야기는 논리에 맞지 않는 거짓 서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린란드 이슈로 촉발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이날 미 국채 금리는 상승세를 보였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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