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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숨은 함정

머니투데이 오동희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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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숨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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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사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단지인 평택 캠퍼스의 P4 라인  /사진=평택(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단지인 평택 캠퍼스의 P4 라인 /사진=평택(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앞으로 2년 정도는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인공지능(AI) 수요는 늘지만 반도체 업체의 공급 증가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홍콩 소재 외국계 증권사의 아시아책임자 말이다. 수십년 반도체를 분석한 그의 분석은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상승의 이유를 잘 보여준다. '코스피 지수 5000(오천피)'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 증시의 엔진은 단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쌍두마차다. 코스피 시가총액(1월 19일 종가기준, 약 4085조원)의 약 38%(약 1542조원, 우선주 포함)를 이 두 회사가 차지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냉정히 현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상 만물에는 작용과 반작용(뉴턴 제3법칙)이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다.

일례로 국내 조선업계는 2008년 8월 신조선가지수가 191.5로 최고점을 찍고 수년치 수주잔량을 자랑하며 장미빛 전망을 내놨었다. 상위 10개 조선업체 중 6개가 한국 기업었지만 그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주 절벽과 실적 악화가 시작됐고 이후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까지 겹치며 장기 침체에 빠졌다.

태양광이나 2차 전지도 마찬가지다. 2011년 초 태양광 산업의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OCI는 이미 수년치 수주가 몰렸다며 대규모 폴리실리콘 공장 투자에 나섰지만 1년만에 급전직하했다. 2021년 장미빛 찬사를 받던 2차전지(배터리)도 "향후 수년간의 수주잔고로 몇 년은 걱정 없다"고 했던 기대는 2년 만인 2023년부터 몰아닥친 캐즘(수요침체)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업계는 슈퍼사이클의 기대감이 크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약 15조원의 적자를 내며 '미운오리' 취급을 받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이제는 분기 영업이익 20조원을 올리는 삼성전자의 '황금알'이 됐다. AI 수요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 덕분이다.


다만 슈퍼사이클의 함정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사업의 수요 증가보다는, 메모리를 탑재하는 IT 제품의 판매감소가 어느 정도 발생하느냐를 봐야 한다.

데이터센터 등 IT서비스 사업에 들어가는 메모리(HBM)의 경우 기업들이 투자비로 인식해 메모리 가격 상승에 덜 민감하다. 메모리에 비싼 돈을 들이더라도 서비스를 경쟁사보다 앞서 시작해서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투자수익률(ROI)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반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소비자가 사용하는 상품 생산에 들어가는 메모리 가격은 제품 원가로 인식돼 가격 민감도가 높다. 부품단가가 올라가면 상품 가격이 비싸져 소비둔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슈퍼사이클은 AI 서비스 확대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이는 메모리 생산업체들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용 범용 메모리 생산을 줄인 결과로 나타났다. HBM 생산에 쏠리면서 '생산공백'이 생긴 범용 D램의 공급 부족이 발생했고, 메모리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주력 범용 D램 가격이 1년 전보다 5배 이상 오르면서 일례로 노트북 가격이 전작보다 70만~100만원 이상 올라 소비 위축이 시작됐다는 소리가 들린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 얘기가 나온다.

과거 조선·태양광·2차전지 등이 '슈퍼사이클'이라는 이름을 들은 후 걸었던 길이다. 자연의 물리법칙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산업에서는 시차를 두고 일어난다. 그래서 문제 발생시 즉시 대응이 어려운 것이다.

슈퍼사이클은 통상 1~2년 안에 끝난다. 반도체 업계는 코로나19 시기에도 2021년 사상 최대의 실적에 취한 적이 있다. 그리고 2년 만인 2023년 그 반작용으로 사상 최악의 실적에 무릎을 꿇었다. 그 짧은 시간 장밋빛 실적에 취해 반작용을 예상못한 결과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초격차 경쟁력을 갖춰 깊은 골짜기가 나타나더라도 이를 지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설 수 있는 체력을 기를 시기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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