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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증명의 시간 다가온 국내 AI 팹리스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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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증명의 시간 다가온 국내 AI 팹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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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고성현기자] 기술적 성장의 시간을 거쳐 온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에 기회가 찾아왔다. 모델 학습에 집중돼 있던 AI 인프라 시장이 점차 추론으로 옮겨오면서다. 특히 엔비디아의 독점적인 범용 인프라에서 벗어나 효율성·최적화를 내세우는 하이퍼스케일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국내 업체들이 집중한 신경망처리장치(NPU)의 강점은 뚜렷하다. 엔비디아의 범용 GPU로는 제공하기 어려운 저전력 연산 효율성과 추론에 최적화된 워크로드 성능이 대표적이다. 아직 이 시장의 확실한 메인 플레이어가 없다는 점도 국내 팹리스의 성과를 기대케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를 의식한 국내 팹리스 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각 기업마다 내세운 주력 칩의 양산 시기가 다가오는 한편, 고객사마다 다른 인프라에 최적하기 위한 다양한 솔루션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리벨리온이 차세대 칩 '리벨(REBEL)'을 기반으로 한 칩렛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갖추고 편의성을 높이며 개발 환경 조성에도 나서는 중이다.

남은 과제는 실적이다. 어떤 기술적 성과를 성취했냐보다, 이제 어느 고객에게 얼마만큼의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느냐가 이들을 가르는 지표가 된다. 당장 수익을 위한 이익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실제 칩을 공급한 이력과 노하우가 장기적 성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이뤄질 기술검증(Poc)과 프로모션을 위한 시험 생산(Single Run)의 문턱을 넘어야만 하는 이유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점도 국내 AI팹리스의 결실을 요구하는 요인 중 하나다. 잠재적 경쟁자로 평가받던 해외 AI칩 스타트업들이 차츰 성과를 내는 단계에 오고 있어서다. 이미 사우디 등에서 매출을 낸 세라브레스는 오픈AI와 2028년까지 100억달러 규모의 칩 공급 계약을 맺었고, 그록은 지난해 엔비디아로부터 200억달러 수준의 핵심 기술 사용권 대금을 지불 받는다. 삼바노바는 AI칩 경쟁력을 원하는 인텔의 인수 대상자로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중이다.

이들과 경쟁하려면 팹리스와 팹리스 간 협력도 필수다. 대다수 AI 팹리스는 NPU에 있어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칩으로 꾸리는 시스템온칩(SoC) 레벨의 경험이 적다는 한계가 있다. CPU 등 핵심 설계자산(IP)을 Arm으로부터 받아 오고는 있으나 이를 하나의 SoC로 동작케 하는 역량은 오롯이 팹리스의 몫이다. 이를 지근거리에서 지원하는 디자인 하우스의 성장은 물론, SoC 개발 경험이 많은 인력 확보와 이를 갖춘 기업과의 협업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는 수확의 시간이다. 가능성만으로는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 오고 있다. 동시에 AI 팹리스가 한 번의 도전으로 물러서지 않고, 지속적인 시도를 이어나갈 지원도 멈춰서는 안된다. 꾸준하고 일관성 있는 뒷받침이 이어질 때 비로소 팹리스 산업의 경쟁력이 갖춰진다. 이러한 시도가 이어지면서 불모지였던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비로소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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