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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광수생각]투자를 묻다

이데일리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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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광수생각]투자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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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월 1일 유럽 8개국에 예고한 관세 부과 않겠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명지대 겸임교수 기고
과거의 성공 방정식 되풀이, 아이 줄어도 사교육비 늘어
AI로 달라지는 직업의 세계…미래·변화 위한 교육 절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명지대 겸임교수]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그런 이유일까. 아이는 학교 공부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공부를 해보고 싶다며 학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 부모로서 반가웠지만 당황하기도 했다. 허둥지둥 학원을 알아봤고 아이는 수학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추운 날 밤 처음으로 다른 부모처럼 아이를 데리러 학원가에 갔다. 뉴스에서 봐왔던 것처럼 길가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두 차선을 점령한 차들을 보며 같은 부모로서 뭉클했다. 동지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 나만 고생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큰 에너지와 자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흥미로운 뉴스가 눈길을 끈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10년간 사교육비 총액은 60% 이상 늘었다는 이야기다. 2024년 사교육비는 29조1919억원으로 2014년의 18조2297억원과 비교하면 60.1% 증가했다. 아이 수는 줄었는데 사교육비로 돈을 더 쓰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미혼 자녀를 둘 이상 둔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61만1000원에 달한다. 초·중·고교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유아와 재수생, 이른바 N수생도 포함된다. 보충과 선행학습이 일상이 됐다. 사교육비는 가구 월평균 소비지출의 12.6%를 차지한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아이 수는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더 늘어나고 있는 아이러니한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불안해서라고 이야기한다. 남들처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지갑을 연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것은 교육과 불안의 문제를 넘어 투자의 문제일 수 있다. 투자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명한 투자를 위해서는 두 가지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투자는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미래는 결코 고정돼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이들의 미래를 향해 현명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고난도의 수학 문제를 풀린다. 타인의 시선과 서열에 맞춘 대학의 간판을 위해 과거의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학습한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끝난 과거의 기준에 아이들의 시간을 맞추고 있다.


부모들은 말한다. 3년만 버티면 인생이 편해질 것이라고. 그래서 가장 많은 돈과 에너지를, 가장 익숙한 길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그 길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3년 안에 숙련된 외과의사를 능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예측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와 질적으로 다른 세계일 것이라는 점이다.

직업의 경계는 흐려지고 전문성의 기준은 바뀌며 한때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길조차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붙들고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하고 있다고 믿는다.


투자는 미래를 묻는 행위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그 미래가 변하고 있다면 투자의 방식도, 교육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잣대로 만들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훈련이 격변하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과연 ‘현명한 투자’가 될 수 있을까. 인류가 만들어낸 진보는 항상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은 발전과 진보를 향한 투자인가, 아니면 과거의 관성에 갇힌 매몰비용인가.

학원을 마치고 뚜벅뚜벅 걸어와 무심히 앞좌석에 앉은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빨리 집에 가자.” 아이는 이어폰을 꽂은 채 나지막이 답했다. “가는 길에 롯데리아 들려줄 수 있어. 소프트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수십만원짜리 강의보다 지금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추운 밤 마음을 녹여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한 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것까지 두 개를 사 가자는 말에 아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 작은 변화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아이들의 ‘미래’와 ‘변화’에 투자하고 있는가. 아니면 부모들의 ‘불안’을 소진하며 과거에 얽매여 있는가. 화를 내면서도 나는 또 내일 아이를 학원에 보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지치지 말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은 항상 변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