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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빨간 고무통에 담긴 남편·내연남 시신 [오늘의 그날]

서울경제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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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빨간 고무통에 담긴 남편·내연남 시신 [오늘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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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내연 관계이던) B씨는 내가 목을 졸라 죽였지만, 전 남편은 죽어 있었고 (시체를 유기한 후) 잊어버렸어요."

11년 전 오늘인 2015년 1월 21일. 집 안 고무통 속에 시신 2구를 10년 가까이 숨겨온 이른바 ‘포천 빌라 고무통 사건’의 피고인 이모(당시 50세·여)씨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이씨는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남편 A씨와 내연남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사체은닉), 어린 아들을 시신과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 방치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시신에서 동일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 △동일한 수법으로 고무통에 유기한 점 △이씨의 키가 150㎝의 작은 체구에도 웬만한 남성 못지 않은 상당한 완력을 보인 점 △남편 사망 사실을 숨긴 점 등을 근거로 2명을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타인을 살해한 뒤 엽기적인 방식으로 시신을 훼손·은닉하고, 그 공간에 또 다른 내연남을 들여 생활한 점에서 범행은 참혹하고 대담하다”며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시신 냄새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고, 그 환경에 어린 아들을 방치했으며, 남편 살해는 끝내 부인한 채 심신미약을 가장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비명지른다” 신고···문 열자 쓰레기 더미와 정체불명의 악취=검찰의 무기징역 구형 약 6개월 전인 2014년 7월 29일 밤 9시 40분. 경기 포천시 신북면의 한 빌라 주민은 “2층에서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신북 파출소 경찰은 빌라의 문이 잠겨 있자 119의 사다리차를 이용해 2층 창문으로 진입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코를 찌르는 썩는 냄새가 퍼졌다. 집 안 바닥과 가구 위에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곰팡이가 핀 가구들 사이로 8살 남자아이가 안방에 쪼그려 앉아 울다 말다 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영양실조가 의심될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

경찰은 아이를 아동 보호기관에 인계한 뒤 악취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계속 수색했다. 곧 안방 맞은편 작은방 구석에 놓인 빨간 고무통에서 악취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10㎏짜리 소금 포대로 눌러둔 높이 약 80㎝, 지름 84㎝의 고무통 뚜껑을 여는 순간 경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고무통 안에는 얼굴에 랩이 감기고 목에 스카프가 둘러진 채 이불에 싸인 시신, 그리고 이미 백골화가 진행될 정도로 부패한 또 다른 시신이 함께 들어 있었다.

사건은 즉시 강력사건으로 전환됐다. 경찰은 고무통을 영안실로 옮겨 거꾸로 들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끈적한 액체에 이어 또 하나의 두개골과 뼈만 남은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2구의 시신이 확인되자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까지 투입됐다. 강력팀·지능팀·교통조사팀까지 포함해 68명 규모의 전담 수사팀이 꾸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시신 신원 확인에 착수했다.

위쪽 시신은 이씨와 내연 관계였던 외국인 남성 B씨로 비교적 빠르게 확인됐다. 문제는 아래쪽 시신이었다. 뼈까지 심하게 부패해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국과수는 그나마 온전한 손가락 하나를 살려내기 위해 공기를 불어넣어 건조시키고 따뜻한 물에 담그는 작업을 반복했다. 끝내 희미한 피부 조각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아래쪽 시신은 이씨의 남편(1964년생)이었다. 그는 2004년부터 실종된 상태였다.


◇"지금까지 쓴 돈 돌려달라"는 말에...수면제 탄 술 먹이고 살해=이씨는 남편 A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키우던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1995년 교통사고로 6살이던 둘째 아들을 잃으면서 가정은 급격히 무너졌다. 부부는 서로를 탓하며 다툼을 거듭했고, 이씨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됐다.

이후 이씨는 인근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낳은 아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은 채 집에 방치했다.

이씨는 제과업체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B씨와 2010년부터 내연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2013년 5월 불륜 사실이 직장에 알려져 B씨가 해고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B씨는 이씨에게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모두 토해내라”고 요구했다.


격분한 이씨는 비염약이라고 속여 술과 함께 수면제를 먹인 뒤 스카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시신은 이불로 감싼 채 1년 가까이 보관됐다. 그는 B씨의 여동생에게 전화해 “오빠가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도망갔으니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의 가족들은 이를 믿어 실종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끝까지 부인된 '남편 살해' 의혹...징역 18년 확정=수사팀은 이씨의 통화 내역을 추적하다 또 다른 내연남 C씨를 특정했다. 끝내 그의 기숙사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이씨는 B씨 살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남편 살인 혐의는 끝까지 부인했다. 그는 “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베란다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며 "겁이 나서 신고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에 큰아들과 함께 시신을 고무통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20대였던 큰아들도 “아버지는 자연사한 게 맞다”고 진술했다. 큰아들은 사체유기 혐의는 공소시효(7년)가 지나 처벌받지 않았다.

하지만 부검 결과 남편의 몸에서도 내연남과 동일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남편 역시 살해됐다고 판단했다.

1심은 두 건의 살인을 모두 인정해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징역 18년으로 감형했다. 남편 몸에서 검출된 약물 성분 역시 시신이 섞이며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2심 판결을 유지, 징역 18년형을 확정했다. 이씨는 2032년 7월 31일, 68세가 되는 해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김도연 기자 dore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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