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 화석 3점에서 유추한 모습(앞쪽 3마리)과 나노티라누스 화석 1점에서 유추한 모습(맨 뒤)을 비교한 그림으로 후자의 덩치가 훨씬 작음에도 팔(앞다리) 크기가 비슷함을 알 수 있다(따라서 상대 크기는 훨씬 크다). 이는 나노티라누스가 어린 티렉스가 아닌 별개의 종이라는 증거의 하나다. 위키피디아 제공 |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고생물학자들의 숙명은 아무리 그럴듯한 가설을 만들어도 이를 반증하는 화석이나 정밀한 분석 데이터가 나오면 두말없이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15년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저명한 고생물학자 헨리 오즈번은 거대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이하 티렉스)를 캥거루처럼 척추가 서고 뒷다리와 꼬리로 지탱하는 자세로 조립해 대중에게 처음 공개했다. 그러나 추가로 화석이 여럿 발견되고 이게 틀렸다는 증거가 쌓이면서 75년이 지난 1990년 해체돼 수평인 몸을 두 다리로 지탱하는 자세로 재조립됐다(영화 ‘쥬라기 공원’의 티렉스 모습).
지난주 학술지 ‘피어제이’에는 티렉스의 성장 속도에 대한 기존 가설이 틀렸다는 새로운 분석 결과가 나왔다. 즉, 티렉스가 다 크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기존의 20~25년에서 15년이나 늘어 35~40년이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 자란 티렉스의 몸무게는 8톤으로 몸통이 아프리카코끼리만 하다. 공룡의 뼈는 계절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 나무의 나이테처럼 흔적을 남기는데, 이를 성장선이라고 부른다. 2004년 고생물학자들은 티렉스 7개체의 뼈 시료의 성장선을 세서 나이를 추측했는데, 사람과 비슷하게 20~25살이면 성체가 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연구팀이 티렉스 화석 17점에서 다리뼈 시료를 채취해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성장선이 더 촘촘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를 해석한 성장 패턴이 에스(S)자형 곡선을 그렸다. 즉,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빨리 자란 뒤 성장 속도가 조금씩 늦어지다 40이 다 돼서야 멈춘 것이다. 티렉스는 꽤 오랜 시간 좀 더 작은 덩치로 살았다는 말이다.
역시 지난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그동안 어린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주장이 우세했던 화석이 다른 종의 성체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1942년 미국 몬태나주 헬크리크 지층에서 발견된 중간 크기 수각류 공룡 두개골은 1946년 고르고사우루스로 분류됐지만 1988년 재조사를 거쳐 나노티라누스(Nanotyrannus), 즉 ‘작은 폭군’이라는 새 학명을 얻었다. 물론 티렉스에 견줘 작다는 것으로 몸무게는 1톤 안팎이나 된다. 그럼에도 공룡학자 다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어린 티렉스로 간주해왔다.
미국 프린스턴대가 주도한 공동연구팀은 두개골 속의 각새골(아래턱뼈 사이에 있는 막대 모양의 뼈로 혀 근육이 붙는 자리다) 역시 다리뼈처럼 단면에 성장선이 있다는 데 착안해 정밀 분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 바깥쪽 간격이 아주 촘촘해(성장이 더디다는 뜻이다) 거의 성체인 별개의 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한편 지난가을 학술지 ‘네이처’에는 2006년 발견된, 골격 전체가 보존된 나노티라누스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는데 역시 티렉스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즉, 팔(앞다리) 크기가 성체 티렉스와 비슷했고 심지어 몇몇 뼈는 약간 더 컸다. 성장하며 비율(체형)이 바뀔 수는 있지만 절대 크기가 작아지지는 않는다. 한편 꼬리 척추뼈 개수가 더 적었고 이빨 개수는 더 많았는데 이런 특성 역시 자라면서 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티렉스와 나노티라누스는 백악기 말기 같은 지역(북미)에서 공존했다. ‘폭군도마뱀 왕’이란 뜻의 티렉스이지만 어린 개체가 비슷한 덩치의 성체 나노티라누스를 만나면 상대가 안 됐을 것이다. ‘쥬라기 공원’의 다음 편은 나노티라누스를 주인공으로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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