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정보미디어부 |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2'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강록 셰프의 소감이다. 올해 최대 화제작인 이 프로그램은 겉보기에 치열한 서바이벌 형식을 띠고 있다. 이미 명성을 얻은 20인의 '백수저'와 재야의 고수 80인 '흑수저'가 맞붙는 구도다. 이번 시즌의 백미는 '언더독'의 반란보다는 '이겨야 본전'인 상황에서도 계급장을 떼고 요리 하나에 혼신을 다한 백수저들의 투혼이었다. 대중은 자신을 그저 '평범한 요리사'라고 낮추며 외식업계 전체에 공을 돌린 우승자의 겸손함에 열광했다. 형식은 서바이벌이었으되, 결과는 모두가 승자인 '낭만적인 결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능처럼 아름답지 않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구축사업의 1차 단계평가 탈락 후폭풍이 거세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려 오히려 승자들의 성과보다 탈락자들에게 씌워진 낙인이 더 크게 조명받는 모양새다. 탈락의 여파는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과 기업이미지 실추로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추진 중인 '패자부활전' 성격의 재도전 기회마저 외면받고 있다. 이미 네이버, 카카오, NC AI 등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기업들 입장에선 재도전으로 얻을 실익보다 또다시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훨씬 크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 프로젝트 동력 자체가 상실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보단 생태계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쟁과 탈락이라는 자극적인 방식이 과연 우리 AI 생태계를 위한 최선이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프롬 스크래치' 여부나 '독자성'에 대한 기술적 기준조차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모호한 잣대로 탈락자를 양산하고, 최종 1~2개 모델만 남기는 '오징어 게임'식 서바이벌이 국가 산업 경쟁력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다.
다행인 점은 모티프테크놀로지스, 트릴리온랩스 등 AI 스타트업들이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최초 '국가대표 AI'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자체 기술력으로 묵묵히 칼을 갈며 훌륭한 모델을 만든 곳들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서바이벌의 룰을 점검해야 한다. 단순히 1등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참여한 기업들이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윈윈'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들의 입에서 "탈락해서 뼈아팠다"가 아닌 "도전해서 좋았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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