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성장, 기후 보호 공식 의제, 현장의 대화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동맹 재편, 지정학적 충돌
스위스 동부의 작은 산악 마을 다보스는 원래 세계 권력의 무대가 아니었다. 결핵 요양지로 알려졌던 이곳은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선택됐다.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 클라우스 슈바프가 다보스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경과 이해관계에서 한 발 물러나 정치와 자본, 학계와 시민사회가 자유롭게 생각을 교차시키는 장소. 다보스는 힘을 겨루는 곳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 다보스는 전혀 다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올해 포럼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있다. 트럼프는 6년 만에 직접 다보스를 찾았고, 국무·재무·상무 등 핵심 부처 수장들이 대거 동행했다. 최근 수년 사이 가장 큰 규모의 미국 대표단이다. 한때 ‘글로벌 엘리트의 토론장’으로 치부되던 다보스가, 올해는 세계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몰려드는 필수 무대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관세, 동맹, 안보, 자원. 올해 다보스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들이다. 공식 의제에는 혁신과 성장, 기후 보호가 나열돼 있지만, 현장의 대화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동맹 재편, 지정학적 충돌로 쏠려 있다. 다보스가 ‘대화를 설계하는 장’이라기보다 현실 정치의 압력이 그대로 투사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 다보스는 전혀 다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올해 포럼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있다. 트럼프는 6년 만에 직접 다보스를 찾았고, 국무·재무·상무 등 핵심 부처 수장들이 대거 동행했다. 최근 수년 사이 가장 큰 규모의 미국 대표단이다. 한때 ‘글로벌 엘리트의 토론장’으로 치부되던 다보스가, 올해는 세계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몰려드는 필수 무대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관세, 동맹, 안보, 자원. 올해 다보스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들이다. 공식 의제에는 혁신과 성장, 기후 보호가 나열돼 있지만, 현장의 대화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동맹 재편, 지정학적 충돌로 쏠려 있다. 다보스가 ‘대화를 설계하는 장’이라기보다 현실 정치의 압력이 그대로 투사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그린란드 문제는 이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극 항로와 자원, 군사적 요충지를 둘러싼 미국의 압박은 단순한 외교 현안을 넘어 유럽의 주권과 집단 안보를 건드리는 사안이다. 유럽의 ‘홈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다보스에서 이 문제가 전면에 떠오른 것은 WEF의 정체성을 다시 묻게 만든다. 다보스는 원래 힘의 충돌을 중재하는 공간을 자처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중재의 언어보다 압박의 언어가 더 크게 들린다.
덴마크가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긴장 속에서 포럼 참여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화의 장이라면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빠진 대화는 상징적일 수는 있어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덴마크의 선택은 다보스식 대화가 과연 갈등의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WEF 창립자의 정신은 시험대에 오른다. 슈바프는 “복잡성이 커진 세계에서는 어느 한 지도자나 국가, 기관도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다보스는 대립이 아니라 협력을 위한 플랫폼으로 설계됐다. 그는 또 “대화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힘이 앞서는 순간, 이 전제는 무력화된다.
다보스는 조약을 체결하는 공식 협상장이 아니다. 대신 세계가 불안정해질수록 권력과 자본, 정책 결정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계산과 의도를 읽고 위험을 조정하는 비공식 접촉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올해처럼 질서가 흔들릴수록 이런 접촉의 가치는 오히려 커진다.
관전 포인트는 그래서 명확하다. 올해 다보스가 다시 한 번 ‘엘리트들의 말잔치’로 끝날지, 아니면 힘의 정치가 난무하는 시대에도 최소한의 공통 언어를 확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다. 협박 대신 협상, 압박 대신 규칙이라는 기본 원칙이 다보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WEF는 여전히 의미 있는 공간이다.
결국 다보스의 성패는 집단 이성이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더라도 사실을 공유하고 힘의 과시보다 상식을 앞세우며 단기 이익보다 장기 안정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는가. 슈바프가 말한 ‘대화의 생명선’이 올해 다보스에서 실제로 작동한다면, 이 작은 산악 마을은 여전히 세계가 길을 잃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장소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보스는 생각을 정리하는 산장이 아니라 힘을 전시하는 무대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2026년 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제56차 연례총회를 앞두고, 2026년 1월 19일 현지에서 세계 각국의 국기와 세계경제포럼(WEF) 로고가 설치돼 있다. 이번 회의는 ‘대화의 정신(A Spirit of Dialogue)’을 주제로 기업가, 과학자, 기업 및 정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연합) |
서혜승 AJP 편집국장 ellenshs@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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