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동국대 교수. 본인 제공 |
올해부터 주가연계증권(ELS·이엘에스)을 판매할 때 금융사의 설명 의무 등 책임이 강화된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의 이엘에스 판매 가이드라인도 함께 적용된다. 투자자 피해액 4조6천억원에 이르는 홍콩 에이치(H)지수 이엘에스 사태로 현재 금융사들이 당국의 제재 심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의 무분별하고 경쟁적인 판매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2008년 환율 급변 속에 기업과 개인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겼던 키코(KIKO) 사태, 2019년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았던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까지 돌아보면, 이름과 포장만 달라졌을 뿐 구조적으로 유사한 파생상품 사고는 수년 주기로 반복돼 왔다. 이번 대책만으로 이런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오랜 기간 일반투자자에게 이엘에스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이런 당국의 규제에 대해 “불완전판매를 줄이고 투자자 보호 수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분명 진일보한 조처”라고 평가하면서도 “다만 금융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조치만으로는 구조적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고, 추가적인 제도적 보완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동국대에서 박 교수를 만나 이엘에스의 구조와 위험성에 대해 물었다.
박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2020년부터 동국대에서 연구·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엘에스는 주식이나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이엘에스를 보험 상품에 비유했다. 이엘에스에 투자한 개인은 보험을 판매한 보험회사라고 했다. “이엘에스 가입자는 시장이 평온할 때는 꼬박꼬박 보험료 수익, 즉 약정 이자를 챙깁니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시장 폭락 등 대형 사고가 터지면 그 모든 손실을 개인이 온전히 물어내는 구조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개인이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극단적인 위험인 테일 리스크(Tail Risk)를 감당하는 대신 작은 수익을 사는 행위죠.” 보통 이엘에스 수익률은 6∼12%다. 상품에 연계된 주가나 지수가 반토막만 나지 않으면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지만, 이례적인 폭락 상황이 발생하면 그간 쌓아온 모든 수익과 원금을 한꺼번에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개인투자자들에게서 이엘에스라는 보험 상품을 구매한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금융회사들이다. “금융사들은 시장이 폭락했을 때 입을 거대한 손실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개인투자자들에게 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얹어주면서 주가 폭락의 위험을 대신 맡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결국 금융사는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안전을 샀고, 개인은 그 비용을 받고 가장 큰 위험을 넘겨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이엘에스의 경우 개인이 부담하는 손실 위험과 기대수익 간 균형이 개인에게 불리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관투자자들은 엄격한 내부통제 기준에 따라 이런 위험한 계약을 거의 하지 않는다”며 “개인이 시장 폭락이라는 거대한 위험의 최종 인수자가 되는 구조가 적절한지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왜 그는 금융당국이 그간 내놓은 조처들이 본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보는 걸까. 당국의 접근 방식이 개인에게 위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그치고, 손실 감내 수준 등 투자 성향에 대한 판단을 상당 부분 투자자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당초 홍콩 이엘에스 사태가 불거진 직후 금융당국은 은행의 이엘에스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금융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과 소비자 선택권 위축 우려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는 판매 금지 대신 규제 강화로 결론이 났다. 박 교수는 “단순히 설명서를 읽어주고 서명을 받는다고 해서, 일반 투자자가 수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테일 리스크의 통계적 확률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개인투자자가 이엘에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미국 등에서는 이엘에스와 같은 구조화상품은 독립투자자문업자(RIA) 등을 통해 개인의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 안에서 위험·수익을 조절하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반면 한국은 은행 창구 중심의 단품 판매 구조로 인해 고객의 재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주기적인 시장 충격 국면에서도 원금 손실이 개인의 경제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인지에 대한 검증이 중요하다”며 “실제 손실 감당 능력과 이해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판매 기준을 정교화한다면, 정책적으로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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