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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시론]핵융합의 산업적 가치〈3〉핵융합 시장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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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시론]핵융합의 산업적 가치〈3〉핵융합 시장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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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어떤 기술이 산업이 되는 순간은 연구실이 아니라 시장에서 먼저 보인다. 핵융합이 바로 그 시점에 있다. 핵융합이 실현될지, 안 될지를 묻는 시대에서 누가 먼저 산업을 만들지 묻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투자자들이 움직인다

시장은 이미 답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에 70개 이상의 민간 핵융합 기업이 있으며, 누적 투자액은 150억달러에 육박한다. 10년 전만 해도 정부 주도의 거대과학이었지만 지금은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샘 올트먼 같은 테크 업계 거물이 앞다퉈 투자하는 산업으로 변모했다.

빌 게이츠는 CFS에, 제프 베이조스는 제너럴퓨전에, 샘 올트먼은 헬리온에 투자했다. 구글은 TAE와 협력하고, 셰브론은 잽(Zap)에 투자했다. 소프트뱅크, 마이크로소프트(MS)도 참여했다.

빌 게이츠는 “핵융합은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 증기기관 발명만큼 변혁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감성적 투자자가 아니다. 벤처캐피털은 10년 안에 수익이 안 나오면 투자하지 않는다. 그들이 돈을 넣었다는 건 그 가능성을 확신한다는 뜻이다.


◇정부 R&D에서 민간 주도로

과거에 핵융합은 정부 연구개발(R&D) 영역이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대표적이다. 34개국이 모여 40년 넘게 진행 중이며, 예산은 200억유로를 넘어섰다. 하지만 상용화는 이제 민간이 주도한다.

각국 정부의 공공민간협력(PPP) 프로그램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ARPA-E를 통해 민간 핵융합 기업에 수억달러를 지원하고, 영국은 STEP 프로그램으로, 일본은 패스트 트랙 이니셔티브를 통해 민간 기업과 협력한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투자 방향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핵융합 '기술'에만 투자했다면, 지금은 '산업화'에도 투자한다. 아직 상용화도 안 됐는데 전력을 사겠다는 고객이 나타나고 있다.

CFS는 구글·에니(Eni)와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었다. 헬리온은 MS·뉴코(Nucor)와, 일본의 헬리컬 퓨전은 슈퍼마켓 체인과 각각 PPA를 맺었다. 핵융합은 이제 과학 실험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이다.

◇핵융합 산업을 '전력 판매'로만 보면 안 된다


핵융합을 전력 판매로만 보면 아직 멀게 느껴진다. 글로벌 핵융합 발전 시장은 2030년대 중반부터 본격 형성돼 2050년까지 연간 1조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발전소를 짓기 위한 장비, 부품, 소재 시장은 더 앞서 열린다.

핵융합로를 건설하려면 초전도 자석, 진공 용기, 블랭킷, 냉각 시스템, 전력 변환 장치 등 수많은 정밀 부품이 필요하다. 공급망 시장만 2040년까지 연간 수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다. 핵융합은 단순히 에너지 산업이 아니라, 첨단 제조업 전반을 재편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다.

세계 전력 시장은 연간 약 2조3000억달러로 조선산업(약 1500억달러)보다 10배 이상 크다. 특히 인공지능(AI) 전력 수요는 연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 핵융합의 키워드도 바뀌고 있다. '그린 에너지'를 넘어 'AI 에너지' '컴퓨트 퓨얼(Compute Fuel)'로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핵융합 산업 개화 및 성장

핵융합 산업 개화 및 성장


◇상용화의 3대 과제:개발 기간, 투자 자금, 공급망

핵융합 상용화에는 개발 기간, 투자 자금, 공급망 세 가지 병목이 있다. 앞의 두 가지는 상당 부분 해결됐다. 개발 기간은 AI가 단축했다. 디지털 트윈, AI 시뮬레이션, 자동화된 설계 덕분에 10년 정도 앞당겨졌다. 투자 자금도 해결됐다. 민간 자본 150억달러가 유입됐고 계속 늘고 있다. 각국 정부도 PPP를 통해 자금을 보태고 있다.

남은 병목은 공급망이다. 공급망은 여전히 느리고, 비싸고, 파편화돼 있다. 진공 용기 하나 만드는 데 5년이 걸린다. 초전도선은 품질이 들쭉날쭉하다. 스타트업은 저마다 다른 사양을 요구한다. 부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품질을 맞추며 납기를 단축하는 체계가 있어야 상용화 속도가 붙는다. 역설적으로, 이 병목을 푸는 쪽이 기회를 잡는다.

◇2035년 경쟁: 공급망 시장이 먼저 열린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이 모두 2035년을 핵심 타임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2022년 미국의 국가점화시설 NIF의 성공 이후 핵융합 상용화에 대한 글로벌 컨센서스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0년대 중반'을 명시했고 CFS, 헬리온, TAE 등 주요 스타트업이 모두 2030년대 초중반 상용화를 목표로 파일럿 플랜트를 짓고 있다.

EU는 DEMO 프로젝트를 통해 2035년 시험 발전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은 2050년대에서 2030년대로 목표를 앞당겼다. 중국은 CFETR 건설을 추진하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2035년까지 10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공급망을 준비해야 한다. 전력 판매는 2030년대 중반이지만, 핵심 부품과 장비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 공급망 시장이 전력 시장보다 앞서 열린다.

이제 질문은 “될까?”가 아니라 “누가 먼저?”다. 첫 번째 상업 핵융합 발전소는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이 지을까, 그 공급망은 누가 주도할까. 그 첫 성공 사례가 시장의 흐름을 만든다. 반도체에서 TSMC가 파운드리 표준을 만들었듯이 핵융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흐름에서 어떤 강점을 가질 수 있을까. 다음 회에는 핵융합 상용화 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보자.

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dwight@enablefu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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