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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퀸 부츠를 향한 사랑과 포용…뮤지컬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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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퀸 부츠를 향한 사랑과 포용…뮤지컬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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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사람을 단정하게 만드는 것은 구두지만, 사람을 단정 짓는 것도 역시 구두다.



세계 신사화를 양분해온 두 축은 영국과 이탈리아다. 이탈리아가 감각과 실루엣의 미학이라면, 영국은 규율과 전통의 미학이다. 특히 영국 노샘프턴을 중심으로 한 수제화 산업은 ‘신사화’라는 개념 자체를 제도화한 상징에 가깝다. 그런 영국에서, 그것도 남성 구두 공장에서 드래그퀸(여성 복장을 한 남성)을 위한 하이힐 부츠가 만들어진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이러니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바로 이 아이러니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7연 막을 올린 ‘킹키부츠’는(3월29일까지) 그 단단한 전통의 상징을 하이힐로 뒤집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05년 실화 바탕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은 폐업 위기에 놓인 구두 공장의 후계자 찰리와 드래그퀸 롤라가 ‘특별한 부츠’를 만들며 생존을 모색하는 이야기다. 익숙한 서사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이 오래가는 힘은 서사의 결과보다 태도에 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누구를 받아들였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비로소 힘을 얻는다. 남성 구두 공장이 지켜온 규율과 품위, 노동의 윤리가 드래그퀸의 부츠와 맞부딪힐 때, 작품은 성공담이 아니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에 대한 질문으로 방향을 튼다.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이 작품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육각형’에 가깝다. 2014년 국내 초연을 시작해 7연까지 이어온 힘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음악이 꽂힌다. 팝의 전설 신디 로퍼가 작사·작곡한 넘버들은 디스코, 팝, 발라드의 감각을 과감히 섞어 쇼의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구두 공장의 노동과 드래그쇼가 전자음 위에서 결합하고, 관객의 몸은 메시지를 이해하기 전부터 먼저 반응한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발끝이 움직인 뒤에야 “그냥 네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돼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작품의 메시지가 거룩한 설교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연출과 안무는 그 음악을 잘 ‘보이게’ 만든다. 에너지 넘치는 군무는 공장이라는 보수적 공간을 무대 위 댄스파티로 전환시키고, 화려한 의상과 하이힐은 캐릭터의 개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밀어넣는다. 수상 이력도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2013년 브로드웨이 초연 때 토니 어워즈에서 작품상 포함 6개 부문을 석권했다.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이번 무대 캐스팅 역시 빈틈이 없다. 찰리 역 김호영, 이재환, 신재범은 ‘가업’과 ‘생존’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각기 다른 온도로 완성하고, 롤라 역 강홍석, 백형훈, 서경수는 화려함의 겉면 아래 숨은 두려움과 품위를 설득력 있게 쌓아올린다.



무엇보다 작품이 전하는 인간애와 포용에 대한 메시지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작품에서 부츠는 중요한 상징이다. 자유의 상징, 해방의 아이콘으로 읽히기 쉽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부츠는 오히려 세상이 요구하는 역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어야 했던 껍질에 가깝다. 롤라에게 부츠는 무대 위에서 버티기 위한 갑옷이고, 찰리에게 부츠는 가업과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다. 중요한 것은 껍질을 벗느냐가 아니라, 그 껍질로 서로를 재단하지 않느냐다.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뮤지컬 ‘킹키부츠’. 씨제이이엔엠 제공


그래서 마지막에 모두가 부츠를 신고 무대에 오르는 장면은 통쾌한 승리라기보다 조용한 합의처럼 읽힌다. 모두가 같은 껍질을 신는 순간, 부츠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된다. 차별의 기준이었던 상징이 무력화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이 말하는 포용은 “너도 나처럼 돼라”가 아니라 “너는 이미 너대로 괜찮다”는 인정에 가깝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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