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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밀어낸 AI 배우 영화계 속속 등장… ‘제작비 혁명’ vs ‘질적 저하’ 논쟁

조선비즈 이경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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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밀어낸 AI 배우 영화계 속속 등장… ‘제작비 혁명’ vs ‘질적 저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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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실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 감정 연기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며 영화와 드라마의 주연급으로 활약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제작 기간과 비용을 최대 90%까지 절감하는 ‘제작 혁명’이라는 찬사가 나오는 한편, 영화계를 중심으로 AI 콘텐츠의 질적 한계와 실존적 위협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단계를 넘어 영화 서사의 중심에 서기 시작하면서, AI를 예술적 주체로 볼 것인지 혹은 단순한 보조 도구로 볼 것인지 산업 내 논쟁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할리우드의 거물급 인사인 배우 겸 감독 벤 애플렉은 최근 AI 기술의 현주소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며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는 19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에 출연해 “챗GPT나 클로드 등 AI가 쓴 글은 기술적 본질상 평균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형편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챗GPT-5가 4보다 약 25% 나을거라 하는데, 전기료와 데이터 비용은 4배나 든다”며 “기술적 발전 속도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 지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AI가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는 공포를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기술은 결국 인간의 예술적 역량에 의존하는 도구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발언에 ‘빅 쇼트’의 실제 모델인 마이클 버리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분석이 정확하다”고 지지했다.

이러한 비판론 속에서도 영화계에서는 실제 인간 모델 없이 100%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AI 배우들이 상업 작품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기술적 시도가 이어져 왔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는 80대 해리슨 포드의 전성기 시절을 AI로 완벽하게 재현한 데 이어, 지난해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의 ‘히어(Here)’는 실시간 AI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배우의 전 생애를 구현해내며 기술적 정점을 찍었다. 특히 고인이 된 배우 이언 홈을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안드로이드 캐릭터로 부활시키거나, 영국의 가상 배우 ‘틸리 노우드’가 실제 배우와 흡사한 외모로 등장해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가상 인간 ‘릴 미켈라’가 실제 할리우드 에이전시와 계약해 배우로 활동하는 등 AI는 이제 영화적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한 상업적 실험이 본격화되고 있다. KT가 공동 기획·투자해 최근 개봉한 AI 옴니버스 영화 ‘코드: G 주목의 시작’ 중 단편 ‘데이 원’의 주인공 ‘철주’ 역에는 AI 배우 ‘라운(Raun)’이 캐스팅됐다. 라운은 MCA 소속의 전속 AI 배우로, 한국 상업영화에서 AI가 주연을 맡은 첫 사례다. 얼굴과 표정, 동작뿐만 아니라 전쟁 상황에서의 세밀한 심리 변화까지 AI 데이터로 구현됐으며, 촬영 없이 기획과 비주얼 구현 전반을 생성형 AI로 완성했다. 수록된 5편의 단편 중 ‘기억관리국’은 실제 배우 이선빈의 연기에 90% 이상의 AI 합성 기술을 결합했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배우 촬영 없이 100% AI 합성 이미지로만 구성됐다.

숏폼 드라마 시장에서 AI의 침투 속도는 더욱 빠르다. 스푼랩스가 운영하는 플랫폼 비글루의 ‘지옥에서 찾아온 나의 구원자’와 ‘서울: 2053’은 기획부터 후반 작업까지 AI를 전면 도입해 제작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시각 효과(VFX)와 로케이션 비용을 90% 이상 절감했다. 마네킹을 촬영한 뒤 표정과 손동작을 AI로 합성하거나 폐허가 된 미래 도시를 가상 공간에서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오콘텐츠그룹 역시 AI 휴먼이 주연을 맡은 ‘곧, 밤이 됩니다’ 등 120여편의 시리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저비용·다작’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술의 순기능과 리스크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AI가 제작 단가를 낮추고 실험적인 표현 범위를 확장하는 도구로 작동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름과 초상권 등 배우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규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는 22일부터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해 표시 의무를 부과하는 ‘AI 기본법’이 시행될 예정이며, 할리우드에서도 AI 복제물 생성 금지 법안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OTT업계 관계자는 “AI 활용이 제작 현장에서 대세가 된 건 맞지만, 그 자체가 경쟁력이 되지는 않고, 결국 시청자가 체감하는 건 이야기와 완성도”라며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보다, 그걸 얼마나 잘 숨기고 잘 쓰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제작비를 아낀 콘텐츠라는 인식만 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경탁 기자(kt8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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