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단독] ‘尹 징역 5년’ 재판부 “사후 계엄 문건, 전두환 시절 문건과 흡사”

조선일보 이민경 기자
원문보기

[단독] ‘尹 징역 5년’ 재판부 “사후 계엄 문건, 전두환 시절 문건과 흡사”

서울맑음 / -3.9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체포 방해와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등 혐의 1심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체포 방해와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등 혐의 1심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백대현)가 지난 16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 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12·3 비상계엄 해제 후 만든 계엄 선포문이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계엄 문건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20일 본지가 확보한 213쪽 분량의 윤 전 대통령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과 함께 윤 전 대통령 측이 강조한 ‘메시지 계엄(경고용 계엄)’이 모순된다는 재판부의 설명도 상세히 포함됐다.

◇전두환에 발목 잡힌 尹… 재판부 “사후 선포문 1980년 문건과 흡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사후 조작된 계엄 선포문에 서명하고 이를 폐기하도록 승인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등)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면서 “1980년 계엄 문건들과 제목, 내용, 구조와 형식 등이 매우 흡사하다”고 밝혔다.

판결문에는 12·3 비상계엄 선포문과 전두환 신군부가 전국으로 확대했던 1980년 5월 17일자 계엄 선포문,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10월 16일 계엄 선포문이 어떻게 유사한지 보여주는 사진이 나란히 제시됐다. 재판부는 ‘대통령 서명란’ ‘계엄 선포 일자’ ‘국무총리의 성명란’ 등이 동일하게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선포문’과 1980년 두 차례 계엄 당시 만들어진 계엄 부서(副署) 문건 사진도 첨부했다. 재판부는 계엄 문건을 대외 공고용인 선포문과 부서 문서로 구분하며, 국민에게 계엄을 알리는 선포문은 공고 성격으로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들의 서명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등의 서명이 있는 문서는 헌법상 필수 절차인 문서주의와 부서제도를 충족하기 위한 내부 결재 문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강 전 실장은 계엄이 헌법 제82조에서 정한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절차적 요건을 갖췄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이 사건 문서를 기안했다”고 했다.

1980년대 계엄 선포문은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증거로 제출한 문서다. 강 전 실장은 12·3 비상계엄 해제 후 만든 계엄 선포문에 대해 “임의로 작성한 참고자료”라며 공문서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고, 윤 전 대통령 측도 “1980년대와 달리 지금은 모든 정부 문서가 전자결재로 이뤄진다”며 1980년대 계엄 선포문과 같은 문서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문서는 향후 계엄 선포 요건의 구비 여부가 문제될 경우 등에 대비해 헌법 제82조에서 정한 문서주의 및 부서제도 요건을 갖췄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문서로 사용될 목적으로 작성된 공문서”라며 같은 취지의 특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외에도 재판부는 강 전 실장이 문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보고받기만 했을 뿐 공모한 사실이 없다는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과 달리 윤 전 대통령, 강 전 실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공모해 문서를 파기했다고 판단했다. 이 내용은 오는 21일 나오는 한 전 총리의 내란 사건 1심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및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및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 뉴스1


◇부메랑 된 ‘메시지 계엄’

윤 전 대통령 측이 내란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꺼내 든 ‘메시지 계엄(경고용 계엄)’ 주장이 오히려 재판부의 유죄 판단을 뒷받침하며 ‘부메랑’이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회 통제 등 물리적 조치 없이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메시지 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국무위원 전원에게 소집 통지를 하지 못할 정도의 긴급성과 밀행성이 요구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단순히 국민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차원이었다면 굳이 늦은 시간에 특정 장관만 불러 논란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계엄과 같은 국가긴급권을 행사할 경우 국가 각 분야에 비상 상황을 초래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국가긴급권 행사의 오·남용에 따른 폐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국정 각 분야의 보좌 및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국무위원 모두에게 국무회의의 소집을 통지할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했다.

재판부는 같은 논리로 윤 전 대통령 측이 “계엄 선포 이후에도 긴급한 경우 사후 부서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은 단지 국민들에게 국가안보위기 상황, 야당에 의한 국정마비 상황 등의 현황 및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메시지 계엄을 선포하려 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사전 부서를 거치지 못할 정도로 긴급성·보안성이 요구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긴급해서 못 했다는 주장과 서로 모순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국무위원 7명을 부르지 않아 이들의 심의권을 침해한 혐의(직권남용), 사후 계엄 선포문을 작성·폐기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 등)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비상계엄, 내란죄 실행 착수로 평가될 여지 있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내란죄 실행 착수’로 평가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은 그간 국무회의 소집 행위는 내란죄 혐의에 흡수되므로 별도의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국무위원 계엄 심의권 침해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이중 기소’에 해당해 공소 기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계엄 선포가 계엄군의 배치 및 포고령 등 후속 조치와 불가분적으로 이어져 총체적으로 헌법기관을 강압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이를 폭동으로서 협박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내란죄 실행의 착수로 평가될 여지가 있음을 별론으로 하더라도”라며 “같은 날 윤 전 대통령이 한 국무회의 소집 행위는 이 사건 계엄 선포 행위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대한민국헌법 및 관계 법령이 규정하는 계엄선포에 필요한 사전절차인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국무회의 소집과 관련한 행위는 (윤 전 대통령이 한 이 사건 계엄의 선포 및 후속 조치가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보더라도)내란죄의 실행의 착수 전 단계에서 행하여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특검의 기소가 ‘이중 기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계엄군 배치와 포고령 등이 내란죄로 평가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민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