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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노 설립자 별세…디자이너 외길 66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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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노 설립자 별세…디자이너 외길 66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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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노 레드'로 불린 강렬한 붉은색의 주인공 이탈리아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19일(현지 시각) 로마 자택에서 별세했다.

발렌티노 재단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는 끊임없는 길잡이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며 "빛과 창의력, 비전을 우리에게 남겼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23일 로마 바실리카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성당에서 거행된다.

1932년 이탈리아 북부 보게라에서 태어난 발렌티노는 밀라노와 파리에서 수학한 뒤 1959년 로마 비아 콘도티에 자신의 하우스를 열었다. 1962년 피렌체 팔라초 피티에서 열린 첫 국제 컬렉션을 통해 주목받았고 1968년 '화이트 컬렉션'으로 이탈리아 쿠튀르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혁신보다 완성도를 택하며, 전통과 우아함을 밀도 높게 쌓아 올린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발렌티노의 이름은 곧 레드카펫을 의미했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다이애나 왕세자비,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를 비롯해 줄리아 로버츠, 케이트 블란쳇, 오드리 헵번 등 수많은 왕족과 배우들이 그의 뮤즈였다. 특히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입은 흑백 드레스, 2004년 케이트 블란쳇의 버터 옐로우 실크 드레스는 발렌티노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발렌티노 레드'는 단순한 색이 아니라 태도였다. 주홍빛이 감도는 강렬한 붉은색은 리본, 레이스, 러플, 자수와 만나 여성의 실루엣을 극적으로 부각했다. 그는 "나는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는 말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설명했다. 파격보다는 정확함, 과장보다는 완성도를 택한 그의 드레스는 실패 없는 선택으로 통했다.

화려한 디자인만큼이나 그의 삶 역시 쿠튀르 그 자체였다. 파리 외곽 17세기 샤토의 정원에는 백만 송이의 장미가 피었고, 요트와 미술품 컬렉션, 세계 각지의 거처를 오가며 제트족의 상징으로 살았다. 오랜 파트너 잔카를로 지아메티와 함께 그는 패션과 예술, 사교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08년 은퇴 이후에도 발렌티노는 패션사 속에 살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발렌티노: 마지막 황제'를 통해 그의 말년과 작업 과정이 공개됐고 루브르 장식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이어졌다. 2011년에는 약 300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상 박물관을 선보이며 자신의 유산을 디지털로 확장했다.

발렌티노는 쿠튀르가 무엇인지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 디자이너로 평가된다.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옷,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오래 지속되도록 만드는 힘. ‘발렌티노 레드’는 그렇게 66년간 패션의 역사에 기록됐다.

[이투데이/정지윤 인턴 기자 (chxma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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