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전기톱 든 도둑, 도망친 경비원들... 루브르 왕실보물 1500억 도난 그날

조선일보 박선민 기자
원문보기

전기톱 든 도둑, 도망친 경비원들... 루브르 왕실보물 1500억 도난 그날

속보
경찰, 가덕도 피습 테러 지정에 "진실 규명에 최선"
전기톱을 든 도둑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자 경비원들이 우르르 아폴론 갤러리를 벗어나 피하고 있다. /프랑스TV

전기톱을 든 도둑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자 경비원들이 우르르 아폴론 갤러리를 벗어나 피하고 있다. /프랑스TV


작년 10월 19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 당시 현장 경비요원들이 머뭇거리다 도둑 일당의 도주를 사실상 방치한 장면이 담긴 방범 카메라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도둑들이 경비원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대놓고 유리를 파손해 보석을 꺼내 가는 모습도 담겼다.

프랑스 TF1과 프랑스 TV 방송이 18일 공개한 박물관 내부 방범 카메라 영상을 보면, 범행 당일 오전 9시 34분 첫 번째 절도범이 창문을 부수고 왕실 보석 전시실인 아폴론 갤러리 안으로 침입한다.

형광 조끼에 얼굴은 두건으로 가린 그가 전기톱을 들고 나타나자 현장 경비원 4∼5명이 아폴론 갤러리 밖으로 우르르 도망친다. 그 뒤를 이어 검은색 옷을 입고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마찬가지로 전기톱을 든 두 번째 절도범이 깨진 창문을 통해 갤러리 안으로 도착한다.

두 절도범은 그들이 찾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듯 곧장 갤러리의 중앙 진열대를 향해 달려간다. 당시 현장엔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다.

절도범들은 전기톱으로 유리에 금을 낸 뒤 팔꿈치와 주먹으로 유리를 완전히 깨고 전시된 보물들을 덥썩덥썩 집어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범인이 먼저 범행을 끝내고 아직 유리를 깨지 못한 공범자를 도왔다.

경비원이 쇠봉을 들고 범인들에게 다가가다 머뭇거리고 있다. /프랑스TV

경비원이 쇠봉을 들고 범인들에게 다가가다 머뭇거리고 있다. /프랑스TV


형광 조끼를 입은 범인이 유리를 깬 뒤 보물을  꺼내가고 있다. /TF1

형광 조끼를 입은 범인이 유리를 깬 뒤 보물을 꺼내가고 있다. /TF1


경비원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절도범들이 각각 진열대 하나씩을 맡아 보안 강화 유리를 깨려고 할 때 경비원 한 명이 통제선 설치에 쓰는 쇠봉을 들고 돌아왔다. 이윽고 다른 경비원이 이 쇠봉을 넘겨받아 절도범 가까이 가려고 두 차례 시도했으나, 망설이다가 끝내 포기하고 만다. 범인들이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전기톱을 소지한 탓에 주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범행을 끝낸 범인들은 들어온 창문으로 다시 나갔다. 이 과정에서 형광 조끼를 입은 범인이 갤러리 바닥에 보석 두 개를 떨어뜨리는데, 무엇인지는 영상으로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떨어진 보석을 주워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고, 뒤따라 공범 역시 창문으로 향했다. 이후 이사용 사다리차를 통해 유유히 내려간 뒤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이들이 갤러리 창문을 통해 들어와 진열대에서 보석을 훔쳐 다시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 52초다. 이들이 훔친 왕실 보물은 총 8점으로, 가치는 총 8,800만 유로(약 1,500억 원)로 추산된다.

익명의 한 여성 경비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하루가 막 시작되는 때였고, 방문객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며 “갑자기 금속판 같은 게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났다”고 했다. 이어 “그때 절단기를 든 사람 중 한 명을 봤다”며 “저는 바로 절도를 위한 침입이라고 직감했다. 그런데 갤러리 안에 없던 동료들은 너무 겁을 먹었다. 테러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문객들도 겁에 질린, 거의 공포에 가까운 표정으로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고 했다.


로랑스 데 카르 박물관장은 “거의 절도 직후 연락을 받았다”며 “도둑들이 사용한 건 콘크리트 절단용 디스크였는데, 그 자체로 흉기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직원들은 방문객을 보호하고 대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매우 침착하게 상황을 통제했다”고 했다.

범행을 마친 루브르 박물관 도둑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X

범행을 마친 루브르 박물관 도둑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X


범행에는 총 4명이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보물을 훔친 2명과 밖에서 지원 역할을 한 2명이다. 현재 4명 모두 체포된 상태다. 이들은 35~39세로, 교통 범죄, 마약 유통, 가중 절도, 성매매 알선 등 전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에 사용한 사다리차 역시 범행 약 10일 전에 훔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훔친 보석 중 한 점을 제외한 나머지 7점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파리 검찰은 보석이 아직 국경을 넘어가진 않은 것으로 보고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 루브르 박물관 아폴론 갤러리 창문에 작업자들이 철제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루브르 박물관 아폴론 갤러리 창문에 작업자들이 철제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회수된 외제니 황후의 왕관 모습. 심하게 찌그러진 상태다. /TF1

회수된 외제니 황후의 왕관 모습. 심하게 찌그러진 상태다. /TF1


회수된 유물은 외제니 황후의 왕관이다. 루브르 근처 도로 배수구에서 발견됐다. 범인들이 도주 중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왕관은 나폴레옹 3세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주문한 것으로, 현존하는 프랑스 군주 왕관 중 단 두 점 가운데 하나다. 왕관은 심하게 손상된 상태다. 낙하 충격으로 윗부분이 눌려 납작해졌고, 왕관 아치들은 분리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손상이 크긴 하지만 복원이 가능하다는 반응이다.

이번 일로 폐쇄된 아폴론 갤러리는 오는 여름 전 재개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선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