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
미국 정부의 의약품 품목관세 부과 여부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진행해온 의약품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 조사가 지난해 12월 종료되면서 향후 관세 부과 또는 수입 제한 조치가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업게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최근 반도체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와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에 200~300%에 이르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수차례 언급했지만, 최종적으로 반도체 관세는 일부 품목에 한해 25%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를 보건의료, 제약·바이오 분야 전반으로 확장하며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의약품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등 무역 장벽을 높여왔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4월1일부터 최장 270일간 진행됐으며, 조사 결과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의약품을 전략물자로 분류해 관세 부과, 특정 국가 수입 제한 등 다양한 조치를 선택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브랜드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어 업계의 우려를 키웠다.
다만 실제 정책 집행까지는 변수가 많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약가 인하 협상 및 미국 내 투자 유치를 병행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아직까지 의약품 관세 관련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최근 미국이 대만과 체결한 무역협정에서 제네릭(복제약)을 무관세로 유지한 점도 전면적인 고율 관세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는 최근 발표된 반도체 품목관세율이 25% 수준에 그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 우려했던 고율 관세보다 낮은 수준이었던 만큼, 의약품 역시 국가안보 이슈를 감안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관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도한 관세는 오히려 의약품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 압박, 美 생산시설·R&D 투자 확대로 돌파
관건은 위탁생산(CMO)·위탁개발생산(CDMO) 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관세 적용 여부다. 완제의약품뿐 아니라 원료의약품이나 CMO 방식으로 생산된 의약품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될 경우 글로벌 제약사의 생산 전략 전반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한국 기업에 위탁을 맡긴 외국 제약사가 CMO·CDMO 약품을 미국으로 들여갈 때도 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에선 셀트리온처럼 미국 시장을 겨냥해 바이오시밀러를 공급하거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의 CMO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업체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
다만 일각에선 CMO와 바이오시밀러가 미국의 의료비 절감과 의약품 공급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율이 적용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특히 바이오시밀러는 미국 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온 만큼, 정책 기조와 충돌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의약품 품목관세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발표된 반도체 품목관세율이 예상보다 크지 않아 의약품에 대한 관세율도 100%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제네릭은 제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바이오시밀러 및 미국 소재 기업이나 3년간 관세를 면제받기로 한 제약기업이 요청한 CMO 의약품에 대한 적용 여부는 의약품 품목관세 발표 이후에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세 부과 조치가 이뤄질 경우 업계는 미국 내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로 압박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올해 1월 중순 기준으로 16개 주요 제약사와 약가 인하 및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약속받는 대신 향후 3년간 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국적 제약사 애브비의 경우엔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한화 약 147조3600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밝혔다. 존슨앤드존슨(J&J), 일라이 릴리,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확대 계획을 공개했다.
국내 기업들, 트럼프 정부 관세 위협 대응 강화
국내 기업도 현지 생산시설 확보로 관세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소재 생산시설 가동에 들어갔다. 일라이 릴리가 운영하던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cGMP) 시설인 브랜치버그 공장은 약 4만5000평 부지에 생산시설, 물류창고, 기술지원동, 운영동 등 총 4개 건물을 갖춘 대규모 캠퍼스로 약 6만6000ℓ(리터)의 원료의약품(DS)을 생산할 수 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기업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지난해 12월22일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미국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 계약 체결 소식을 알렸다.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에 위치한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은 총 6만ℓ 규모의 원료의약품 생산공장으로 두 개의 제조동으로 구성돼 있다. 이와 함께 공장 운영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현지 인력 500여명을 전원 고용 승계해 운영 안정성도 확보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메인무대에 올라 “지난해 말 확보한 송도 제3바이오캠퍼스 부지와 미국 록빌 공장 등을 기반으로 올해도 ‘글로벌 톱티어 CDMO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SK바이오팜은 캐나다 소재 CMO 업체에 제공한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주력 제품인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의 미국 내 CMO 시설을 확보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23년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의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고, 약 1억달러를 투자해 임상 개발부터 상업 생산까지 가능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지난해 4월엔 아시아 소재 바이오기업과 ADC 생산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설비 가동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3년 남아 있는 만큼, 의약품 공급망과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추가 정책 변수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관세 시나리오별로 생산·공급 구조를 점검하고, 미국 현지 생산 확대나 포트폴리오 조정 등 중장기 대응 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서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