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함영준의 마음PT]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마음은 이렇게 회복된다(중)

조선일보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원문보기

[함영준의 마음PT]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마음은 이렇게 회복된다(중)

속보
경찰, 가덕도 피습 테러 지정에 "진실 규명에 최선"
불면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면, 마음은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돌아온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많은 사람들이 뜻밖의 고통을 겪는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있는 요양병원을 다녀오는 길, 그분은 집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고 했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들어가기 싫었다고 했다.

“괜히 발걸음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날 밤, 잠은 조금 나아졌지만 생각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나는 아내에게 잘한 남편이었을까.’

‘이제 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지.’


상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더 괴로워진다. 몸은 조금 회복됐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아프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차라리 처음이 나았던 것 같다.”

여기서 흔히 생기는 오해가 있다.


상실 이후의 고통은 슬픔이 깊어져 서가 아니다. 질문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에 커진다.

상실 후 불면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우울할 수 있다.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면 자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셔터스톡

상실 후 불면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우울할 수 있다.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면 자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셔터스톡


왜 의미를 찾을수록 더 괴로운가

이 시기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유 없는 고통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점점 커진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왔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문제는 이 질문들이 지금의 마음 상태에서는 답이 나오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점이다. 상실 직후의 뇌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 상태에서 삶 전체를 평가하려 들면, 마음은 사실보다 죄책감과 후회로 빈칸을 채운다. 그래서 의미 찾기는 위로가 아니라 자책이 된다.

나 역시 우울을 겪던 시기에 비슷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밤마다 되새기며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성찰이 아니라 ‘루미네이션(생각의 되새김질)’이었다.

이 지점에서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미치료(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은 아내를 잃은 한 남성의 상담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 남성은 “아내를 잃고 나서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프랭클은 그의 슬픔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약 당신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아내는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요?”

그 남성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아마… 아주 힘들어했을 겁니다.”

프랭클은 그제야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그 고통을 대신 해주고 있는 겁니다”

프랭클의 요지는 단순했다.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어떤 태도로 감당할 지는 각자 선택할 수 있다고.

그래서 이 단계에서 필요한 건 더 깊은 해답이 아니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상실의 2단계에서 내가 권하는 원포인트 레슨은 이것이다.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추고, 역할에 대한 질문을 하라.”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역할은 아주 작아도 충분하다.

  • 오늘 아침 일어나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
  • 밥 한 끼를 챙겨 먹는 사람
  • 약속한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사람
  • 아파트 경비원이나 이웃과 인사 나누는 사람
  •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 주말에 집안 청소를 하는 사람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역할부터 찾아보자. 아직은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셔터스톡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역할부터 찾아보자. 아직은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셔터스톡


이건 삶의 의미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의미는 회복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상실 이후의 마음은 한동안 큰 질문을 감당하지 못한다. 대신 작은 역할을 반복하며 다시 삶에 발을 딛는다. 그 과정 속에서 의미는 질문하지 않아도, 뒤늦게 따라온다.

지금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아직 그 질문을 할 단계가 아닐 뿐이다. <계속>

▶<마음건강 길>에서 더 많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