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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일종의 고백

노컷뉴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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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일종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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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의 가장자리톡]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소문난 Y스시집 입구에 '건물 임대' 현수막이 걸렸다. 그 집에서 싱싱한 스시를 먹어 봐야지 했는데…. 그곳을 지나올 때마다 유리문에 붙어 있는 임대 안내문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스시집 사장이 얼마 전 새벽에 죽었다고 했다. 단골 커피집 주인이 알려준다. 가족과 함께 스시를 먹으려고 전날 예약을 했는데, 취소 연락이 왔었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장님이 새벽에 갑자기 죽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약을 취소한다고 하더라고요. 전화를 건 여자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어요. 아내인지 딸인지…. 사장 나이가 50대였대요."

커피집 주인은 스시집 사장의 돌연사 이야기를 듣고 나자 불쑥 허망하다는 생각보다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했다.

"내일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잖아요. 당연하지 않은데. 전화를 받았던 그 날, 종일 기분이 우울하더라고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괴이했어요. 사흘째 되던 날 신경정신과를 찾아갔어요. 묘하고 이상했어요. 살아 있지만 죽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겨우 잠들기는 했는데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했어요. 이게 뭘까? 헷갈렸어요. 날이 밝으면 수산시장에 가서 신선한 횟감을 골라야 할 사람인데. 새벽에 말도 없이 가버린 거잖아요. 그런데 왜 우울한 걸까요?"


커피집 주인은 핏기가 없이 부어오른 얼굴이다.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이 완벽하게 현실이 되면 불안하다. 그는 타인의 비극에 전염된 것이다.

한낮 최고기온이 영하 3도였던 다음 날. 팥칼국수가 먹고 싶어 시장 골목의 단골 백반정식집에 갔다. 70대 여주인이 팥칼국수를 차려놓더니 자기 얘기 좀 들어보라는 듯 나를 바라본다.

"아무도 모를 거야."


비밀은 신비와 양면적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긴다. 어떤 동기가 그녀에게 속마음을 내보이도록 한 거다.

"식당 문을 닫고 며칠씩 사라질 때가 있었거든. (잠시 멈칫하더니 마음을 바꾼 듯 말문을 연다) 수술할 때, 항암 치료할 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지금도 여기 시장 사람들 몰라. 오 년이 지났는데도. 머리카락이 다 빠지더라고. 딸이 가발을 사줬어. 그걸 쓰고 감쪽 같이 장사를 했지.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었지.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산목숨이 얼마나 질겨.

스시집 사장이 새벽에 죽었다는 소릴 듣고 나니까 그냥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냉장실에 들어있던 가자미하고 참치, 광어, 한치, 도미, 연어, 성게알은 어쩐대. (손가락으로 꼽다가 잠시 휑한 눈으로 밖을 내다본다)


그래서 암에 걸렸지만 나는 나를 허비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남들은 불행이라고 하겠지만 내 쪽에서 보면 행운일 수도 있거든. 닥쳐봤잖아. 가차 없다는 것도.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 거지."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무서워졌다. 새벽에 죽은 이가 남긴 불행의 바이러스에 전염된 걸까? 그래서 약간 긴장이 됐다. 그녀의 '가차 없다'는 말에 감정이 일렁인다. 너무나 사소할 수도 있는 내면화된 나의 그림자에 이렇게 흔들리다니…. 그녀의 쭈글쭈글한 얼굴이 꼼지락대는 실지렁이 같다.

"뇌종양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누웠을 때, 여섯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곁을 지키고 있던 딸요. 그 아이를 보는데, 가슴에 달라붙는 것이 있더라고요. 사무친다고 하잖아요. 미안한 마음요. 나는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었거든요. 속도 좁고.

딸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지요? 무심한 게 아니라 온전하지 못한 거.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뒤늦게 깨달았어요.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친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나만 사는 게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딸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지독히 이기적인 나를 봐줬어요. 긴 세월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타인처럼 보이자 '미안하다'는 낱말이 맴돌더라고요. 혀끝이 아니라 가슴에서요. 그런데 아직…. "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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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에서는 1월의 차가운 바람이 분다. 뭔가가 흔들렸을 때 자신을 재구성하려는 것처럼 마음이 요동친다.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넘길 수 있는 마음의 과제가 거대한 선고로 변모된 것이다. 새벽에 죽은 스시집 사장이 못다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으로 돌이킨 거는 말한 것과 똑같아. 지금 살아 있잖아. 새벽에 죽은 것도 아니고."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백반정식집 주인이 빈 그릇을 쟁반에 담는다. 손님이 끊어진 오후의 식당은 나른하지만 여유롭다. 한겨울 오후의 시간은 흰 꼬리로 길을 내며 창공을 날아가는 제트기처럼 빠르다. 그 자리로 붉은 노을이 비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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