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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된 칩값… 100만원 하던 PC가 170만원 됐다

조선일보 최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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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된 칩값… 100만원 하던 PC가 170만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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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 치솟는 D램 가격
서울의 대표적 조립 PC 전문 상가인 용산구 한강로 선인상가의 19일 모습. 최근 D램 가격 폭등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자 많은 점포가 개점휴업 상태다. 상가 전체에서 가장 붐빈다는 1층 매장도 텅 비었다./장경식 기자

서울의 대표적 조립 PC 전문 상가인 용산구 한강로 선인상가의 19일 모습. 최근 D램 가격 폭등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자 많은 점포가 개점휴업 상태다. 상가 전체에서 가장 붐빈다는 1층 매장도 텅 비었다./장경식 기자


“D램 값이 진짜 금값 됐어요. 이래서 누가 지금 PC를 사겠어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선인상가의 한 조립 PC 판매 업체. 홀로 매장을 지키던 김모(30)씨는 적막한 복도를 한참 바라봤다. 매장 맞은편 작업실은 텅 비어 있었다.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PC를 조립·포장하는 공간이다. 김씨는 “연말·연초에도 PC 몇 대 못 팔았다”며 “한 달 넘게 개점휴업 상태”라고 했다.

PC의 핵심 부품인 D램 가격이 넉 달 새 6배 급등하며 벌어지는 일이다. 인공지능(AI) 발 D램 수요 폭등이 서민 경제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PC 시장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9월 7만원쯤 했던 삼성전자 DDR5 16GB(기가바이트) 램 모듈 가격은 19일 현재 41만~44만원대다. 김씨는 “32GB를 넣던 게임용 PC의 경우, D램 값만 14만원에서 84만원이 된 셈”이라며 “100만원 전후하던 (보급형) 게임 PC가 순식간에 170만원이 되니 수요가 급감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D램 가격 때문에 PC가 안 팔리자, 업체들은 고육지책으로 램 용량을 16GB로 낮춘 제품을 내세웠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D램이 들어가는 그래픽 카드와 고성능 SSD 등 다른 PC 부품 가격도 덩달아 뛰며 PC 가격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청소년과 젊은 남성 등, 지갑이 얇은 고객 상당수가 구매를 포기하고 ‘가격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노트북 PC 시장에선 품귀 현상도 나타났다. D램 가격 상승으로 제품 마진이 줄자 100만원대 이하 중저가 가성비 노트북PC 공급이 크게 줄었다. 심지어 재고가 꽤 있던 제품마저 유통 과정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사자는 가수요와 기존 재고 물량을 신학기 시즌에 (오른 D램 가격 기준으로) 비싸게 팔려는 일부 유통 업체들의 움직임이 겹쳤다”고 했다. 100만원대 이상 중고가 제품 가격도 성큼 뛰었다. 삼성·LG전자의 주력 AI 노트북 PC 제품은 지난해 11월 140만원대에 팔리던 제품이 현재 170만원대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IT 전문 매체 톰스하드웨어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의 조립 PC 매장들은 PC 가격을 그날그날 메모리 가격에 따른 ‘시가’로 내기 시작했다.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의 PC 평균 가격은 지난해 말 대비 20~30%가량 올랐다. 프랑스 IT 전문 매체 레뉘메리크는 “특히 저가 데스크톱 및 교육용 PC 판매가 (제조업체의) 공급 부족으로 크게 줄었다”고 했다.


D램 가격 급등으로 PC 수요가 크게 줄면서 가뜩이나 한산하던 용산 선인 상가의 조립 PC 전문 매장이 아예 텅텅 비었다. /최아리 기자

D램 가격 급등으로 PC 수요가 크게 줄면서 가뜩이나 한산하던 용산 선인 상가의 조립 PC 전문 매장이 아예 텅텅 비었다. /최아리 기자


일본에선 이전 세대 D램인 DDR4 기반으로 CPU(중앙처리장치)와 그래픽카드 등을 ‘다운그레이드’한 PC 제품도 팔리고 있다. 아키하바라의 조립 PC 매장 운영자 카와모토(50)씨는 “예전엔 메모리 가격이 내려가기를 기다리면 됐지만, 이번에는 AI 수요라는 구조적 요인이어서 언제 안정될지 알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D램 가격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와 디램익스체인지 등은 올해 1분기 PC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55~60%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투자은행은 “현재는 PC 가격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급등세가 계속되면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리포트를 준비 중으로 알려졌다.

당장 생활필수품인 스마트폰 가격 인상이 유력하다. 스마트폰은 D램 등 메모리 가격이 부품 원가의 약 10~15%로 알려졌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는 “메모리 부품의 원가 비율이 기존의 10% 선에서 20% 이상으로 껑충 뛰어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올해 출시될 차세대 모델의 가격 상승은 물론, 이미 판매 중인 기본 모델 가격도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IT 매체 아르스테크니카는 “D램 가격 상승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클라우드 업체의 비용·가격을 상승시키며 디지털화한 사회 전 분야의 인프라 비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D램·SSD·그래픽카드

D램: 컴퓨터·스마트폰·서버 등에서 작업 중인 응용 프로그램(앱)과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꺼낼 수 있는 메모리다. 전원을 끄면 저장된 내용은 모두 사라진다.

SSD(Solid State Drive):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는 ‘플래시 메모리’로 만든 대용량 저장 장치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해 운영체제와 응용 프로그램, 문서와 동영상 등을 저장하는 데 쓰인다.

그래픽카드: 컴퓨터가 화면에 보여줄 게임과 동영상 등의 이미지를 만들어 모니터에 보내는 부품이다. 영상·이미지 데이터를 빠르게 작업하기 위해 고속의 D램을 장착하고 있다.

[최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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