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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이 놓치는 것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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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이 놓치는 것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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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의 검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의 검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면기 | 경찰대 법학과 교수



검찰개혁 논의가 원점으로 회귀했다. 지난 9월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이후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 추진단’이 닻을 올렸지만, 4개월간의 항해 끝에 내놓은 성적표는 처참하다. 최근 공표한 ‘공소청’과 ‘중수청' 입법안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거센 역풍을 맞았다. 개혁의 청사진이 되어야 할 법안들이 오히려 개혁의 동력을 갉아먹는 역설적인 상황. ‘검찰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탄생한 이재명 정부의 첫 작품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답은 간단하다. 가게 간판은 바꿔 달았지만, 그 안에서 파는 메뉴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입법안 곳곳에는 검찰의 ‘수사 본능’이 끈질기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로 인해 공소청 검사에게 직접적인 보완수사권을 쥐여줄 것인지, 중수청의 인적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핵심 쟁점 앞에서 논의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결국 이번 입법안은 “죽어도 수사권은 못 놓겠다”라는 검찰 조직의 속내를 활자로 확인시켜 준 셈이 되었다. 앞으로 이어질 조직적 저항의 강도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판을 새로 짜는 ‘묘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완전한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개혁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검찰 ‘정상화’에 필요한 전부는 아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광범위한 우리 검찰의 수사 권한은 삭제하고, 거대한 수사 인력은 대폭 축소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역시 검사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인 ‘공소의 제기와 유지’에 대한 재정립도 필요하다. 그동안 검찰 조직에서 공판검사는 승진 코스에서 밀려난 이들이 가는 한직이거나, 워라밸을 챙기는 자리로 여겼다. 오죽하면 완성된 수사기록을 법원으로 배달만 한다는 뜻에서 ‘지게꾼’이라는 자조 섞인 비유가 나왔겠는가. 법정에서의 역할이 미미하니, 검사들은 밀실 같은 조사실에서의 권력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권을 놓는 순간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판 단계에서 검사의 역할을 분명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검사가 피고인과 협의하에 형량을 결정하고 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유죄협상(플리바게닝) 제도’, 중요한 진술을 제공한 피의자에게 형사소추를 면제하거나 형벌을 감면하는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다. 유죄협상 제도는 주로 영미권 국가에서 운용되었으나, 20세기 후반부터 대륙법계 국가들도 일부 변형된 제도를 도입하였다.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는 더욱 폭넓게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보수적인 일본마저 공식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도입 배경은 거의 유사하다. 오늘날 폭증하는 형사사건에 질식해가는 사법 시스템을 구하기 위한 정책적 결정이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형사사법 시스템의 모든 단계에서 아우성이 들려온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업무 폭탄에 시달리고, 검찰은 특검 정국과 직접 수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법원은 심각한 재판 지연으로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마치 공기를 너무 많이 불어넣은 풍선처럼, 시스템 전체가 ‘펑’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인력을 조금 늘리거나 제도를 미세하게 개선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으로는 어림도 없다.



미국 형사재판에서 그토록 치열한 법정 심리가 이뤄지는 것은 전체 유죄판결의 95%가 유죄협상을 통해 종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유죄협상’ 등의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범죄자와 거래한다는 거부감에 그대로 갇혀 있기엔 현실이 너무 위급하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건은 신속한 협상으로 처리하고, 남는 자원을 실체적 진실 규명이 절실한 중요 사건에 쏟아부어야 한다. 이는 사건 당사자들을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 수사·기소 분리의 시대인 만큼, 그간 우려해온 제도 남용의 위험성도 크지 않다. 협상 과정에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만큼, 법조 인력과 문화도 한결 성숙해졌다. 이러한 변화가 ‘검찰 정상화’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검사들은 명실상부한 엘리트다. 법관과 동일한 자격으로 임용되고 강력한 신분 보장을 받는 그들의 자존심과,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을 이해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검사의 자존심을 세워야 할 곳이 반드시 밀실 같은 ‘조사실’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를 왜곡하는 일이다. 검사의 빛나는 지성과 법률가적 양심이 발휘되어야 할 진짜 무대는 ‘공판 단계’와 ‘법정’이여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공소청 검사의 직무 조항에 근거를 심는 것부터 시작해, 향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구체적인 디테일을 완성해 나가는 단계적 접근이면 충분하다. 이미 수많은 연구와 논의가 축적되어 있다. 이제는 ‘설계의 묘’를 발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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