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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가오나시, 4m 넘는 용… 손맛으로 되살린 '지브리 명작'

파이낸셜뉴스 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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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가오나시, 4m 넘는 용… 손맛으로 되살린 '지브리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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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80분 음악극으로 국내 공연

레미제라블 연출가 손에서 탄생
"미야자키 감독이 흔쾌히 수락"

기술 줄이고 아날로그 감성 살려
가마 할아범·숯검댕이 등 캐릭터
사람이 직접 퍼펫 조정하며 표현
"배우와 관객 상상력 필요한 작품"


길이 4m가 넘는 하쿠의 용 퍼펫은 4000가닥의 털을 수작업으로 심어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CJ ENM·토호 제공                                  '센과 치히로' 무대판은 영화 세계에 관객이 직접 걸어 들어가도록 이끄 는 체험형 복원에 가깝다. CJ ENM·토호 제공

길이 4m가 넘는 하쿠의 용 퍼펫은 4000가닥의 털을 수작업으로 심어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CJ ENM·토호 제공 '센과 치히로' 무대판은 영화 세계에 관객이 직접 걸어 들어가도록 이끄 는 체험형 복원에 가깝다. CJ ENM·토호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센과 치히로)이 19일 기준 인터파크티켓에서 예매 순위 1위를 지키며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마련된 포토존과 공식 굿즈 판매 공간에는 관람객들이 몰려들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 이어졌다.

무려 180분에 달하는 일본 오리지널 투어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화 속에 빠진 듯한" "사람 손맛 느껴지는" 공연 덕에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지난 2003년 미야자키 감독에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안긴 '센과 치히로'라는 강력한 IP가 무대 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퍼펫과 배우, 아날로그 무대의 판타지


이번 공연은 일본 제작사 토호가 창립 90주년을 맞아 지난 2022년 처음 무대화를 추진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오리지널 연출가로 토니상과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한 존 케어드가 연출을 맡았다. 그의 일본인 아내 이마이 마오코가 공동 번안 및 연출 보조로 참여해 작품의 문화적 정체성을 단단히 했다.

공연은 우연히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 10대 소녀 치히로가 온천장을 배경으로 수많은 존재들과 마주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일본 초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제47회 카쿠타 가즈오 연극상 대상 수상 이후 영국 런던과 중국 상하이를 거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국내에서도 1차 티켓 오픈과 동시에 약 3만석이 매진되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센과 치히로' 무대판은 영화의 세계를 관객이 직접 걸어 들어가도록 이끄는 체험형 복원에 가깝다. 작품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골로 이사 가는 자동차 장면에서 출발한다. 이때 배우들은 과장된 신체 움직임으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의 질감을 표현하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회전 무대와 정교한 세트 전환, 배우와 퍼펫의 유기적인 결합은 영상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를 비롯해 온천장 가마 할아범과 그 일터를 기어다니던 숯검댕이, 유바바의 거대한 아이 보오, 초록 얼굴의 돌머리 삼총사까지 더 이상 화면 속 캐릭터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체로 등장한다.

특히 퍼펫의 활용이 돋보인다. 50체가 넘는 퍼펫이 배우들에 의해 직접 조종되며 극에 일조한다. 거미처럼 여섯 개의 팔을 지닌 가마 할아범은 여러 배우가 하나의 신체를 분담해 움직인다. 가오나시는 장면에 따라 1명에서 최대 12명의 배우가 함께 연기하며 캐릭터가 지닌 욕망의 크기를 대변한다. 길이 4m가 넘는 하쿠의 용 퍼펫은 4000가닥의 털을 수작업으로 심어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커튼콜에서나 모습을 드러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라이브 연주는 장면의 리듬과 감정을 이끄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존 케어드 연출은 "음악감독 브래드 하크가 원작의 정서를 살리면서도 무대에 맞게 편곡해 극적 밀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치히로 역의 카미시라이시 모네와 카와에이 리나는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소녀의 두려움과 성장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치히로 그 자체"라는 평가를 끌어낸다. 영화에서 같은 배역의 목소리를 맡았던 나츠키 마리는 20여 년이 지나 무대에서도 '유바바·제니바'를 연기하며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영화 다시 만나는 '체험형 복원'


'센과 치히로' 무대판은 오늘날 무대서 적극 활용하는 최첨단 영상기술의 활용도는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아날로그 무대예술이 더 돋보인다. 또 연극적 재해석이나 과감한 변주를 앞세우기보다는 그때 그 시절 스크린으로 만났던 명작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다시 불러오는 데 충실하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시공간에 머물며,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언어로 재현된 세계를 함께 경험하는 것. 이 무대는 바로 그 공유된 감동의 순간을 완성도 있게 제공한다.


케어드 연출은 최근 국내 언론과 만나 무대화의 출발점을 회고하며 "미야자키 감독이 흔쾌히 수락해줘 놀랐다"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와 순간 패닉이 왔었는데, 동시에 도전의식도 생겼다. 다양한 크리처와 마법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실제처럼 느끼게 하려면 배우와 관객 모두의 상상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치히로 역의 모네는 "직감에 따른 결단력과 자기 자신을 믿는 법을 치히로에게서 배웠다"며 "자신의 이름에 담긴 사랑과 소중함을 느끼고 돌아갔으면 한다"고 바랐다.

다만 무대 전면이 마치 스크린처럼 활용돼 자막을 보기가 다소 불편하다. 원작을 미처 못 봤다면 미리 보고 가는 게 더 즐거운 관람이 될 전망이다. 3월22일까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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