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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기후 그래프가 말해주지 않는 것

파이낸셜뉴스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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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기후 그래프가 말해주지 않는 것

서울맑음 / -3.9 °
이보미 전국부 차장

이보미 전국부 차장

기후변화는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의 방향에는 익숙하다. 기온은 오르고,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기후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느끼는 인상은 다르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기상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우리나라 113년 기온 분석보고'를 보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910년대 평균 12.0도에서 2010년대 13.9도로 약 100년 동안 1.9도 상승했다. 이 흐름만 놓고 보면 기후변화는 서서히 진행되는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 평균기온은 14.8도로 올라섰다. 불과 10여년 만에 0.9도가 추가로 상승했다. 변화의 방향은 같지만, 속도는 전혀 다르다. 이 속도 변화는 기록 경신보다 분포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해 상위 10개 가운데 7개가 최근 10년에 몰려 있다.

더운 해가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국면을 지나, 고온이 반복되는 구조로 전환됐다는 의미다. 이 변화는 체감 지표에서 더 선명히 드러난다.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는 각각 16.9일, 28일 늘었다. "밤에도 숨이 탁탁 막힌다"는 말은 개인의 느낌이 아니라 통계로 확인되는 현실이다.

폭염과 한파는 '참아야 하는 날씨'가 아니라 대비해야 할 위험이 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반복되는 재난으로 인식하며 방재비용을 늘리고 있다. 기상청은 폭염과 열대야에 대한 경보를 세분화하고, 재난성 호우에 대비한 상위 단계의 긴급재난문자 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보건·사회 연구들은 극한 기온에 따른 위험이 고령층과 저소득층, 주거·에너지 여건이 열악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같은 폭염이라도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의 하루는 전혀 다른 것처럼, 그 고통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불균등하게 나뉜다. 고령화라는 구조적 변화도 변수다. 고령화사회에서는 재난 대응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면 기존 대응체계는 무력화될 수 있다. 이동이 어렵고,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과거의 평균적 가구와 평균적 인구 구조를 전제로 한 대책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의 속도가 바뀌었다면, 대응의 디테일도 달라져야 한다. 기온 그래프는 평균을 보여주지만, 사람들은 평균 위에서 살지 않는다. 더 정교하고 세심한 대응이 필요한 때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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