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한 동네 형처럼 기댈 수 있는 선배처럼 시작한 교직생활은 돌아보니 관심과 사랑, 열정이 없이 해낼 수 없었던 시절로 기억에 남았다.
중부매일은 창간 36주년을 맞아 평교사부터 교장까지 36년간의 교직생활을 통해 교단과 학교를 지켜온 강구상 초평초등학교 교장을 통해 교육의 변화상과 가치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편집자 당시 교실은 칠판과 분필, 연탄 난로와 도시락이 전부였다.
겨울이면 난로 위에 학생들의 도시락이 층층이 올라가 있었고, 컴퓨터나 디지털 기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환경은 열악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뛰고 노래하고,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보낸 시간은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회고했다.
# 아이 인생 바꾸는 진심어린 말 한마디 '중요' 강구상 교장의 교육철학 중심에는 늘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자리했다.
교사가 일상 속에서 건네는 말이 아이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어왔다.
청주 모충초 재직 시절, 몸은 왜소하지만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주저 없이 표현하던 한 여학생에게 "너는 아나운서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
훗날 TV 뉴스 화면 속에서 그 제자를 다시 마주하며 교사의 작은 관심과 한마디 조언이 아이의 진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이처럼 교사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삶에 오래 남는 순간은 또 있었다.
또 다른 제자는 부모의 이혼으로 가정환경이 달라지면서 스스로를 문제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거칠고 반항적인 모습이었다.
담임 맡기를 꺼려했던 선생님들과 두려워하며 기피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믿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의 비서실장이 돼 달라"는 요청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맡겼고 방과후에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이의 변화는 졸업식 날, 어머니가 눈물로 전한 감사 인사로 충분히 증명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모범생으로 칭찬이 자자했던 제자는 현재 글로벌 CEO를 목표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강 교장은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하교시간 전에는 부정적인 말을 금지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당시 그가 맡았던 학급 급훈은 '웃음이 퐁퐁 샘솟는 교실'이었다.
그는 교사 시절의 어려움보다 연차가 쌓여 학교 관리자 역할을 맡으면서 고민과 어려움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최근 들어 심화된 교권 약화와 악성 민원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체감되는 과제로 남아 있다.
교사들이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진 현실에 대해 그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그를 버티게 한 힘은 초임 시절 품었던 교육의 초심이었다.
그는 힘들 때마다 공자와 맹자의 교육철학인 '학불염이교불권(學不厭而敎不倦)'을 떠올렸다.
교육의 본질인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이 문장은 그의 교직 생활을 단단하게 지탱한 신념이자 철학이었다.
# '디지털화·관계 변화·저출산… 학교는 상전벽해' 36년간의 학교 현장을 돌아보며 그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교실의 디지털화, 교권과 인권에 대한 인식변화, 저출산으로 인한 교육 패러다임 변화를 꼽았다.
칠판과 분필에서 출발한 교실은 AI, 전자칠판, 디지털 교과서가 일상인 시대에 놓여 있다.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이어서 체벌이 '사랑의 매'로 엄연히 존재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학생의 인권이 강조되고 다양한 교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급격한 교육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학교 자체의 아노미( anomie, 공통된 가치관이 붕괴되고 목적의식이나 이상이 상실됨에 따라 사회나 개인에게 나타나는 혼돈 상태)현상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강 교장은 "학교도 양적인 시대에서 질적으로 도약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맞춤형 교육에 따른 다양한 평가 시스템으로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삶을 가르치는 멘토 돼야 지난 36년간의 교육현장 변화만큼 앞으로 36년 후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지 묻자 그는 AI튜터가 보편화 되고, 가상현실로 확장된 물리적 공간의 변화와 지식전달자에서 학생 심리 멘토로서의 교사 역할 변화를 전망했다.
현재 생성형 AI 개발자로 일하는 아들과 AI 반도체칩 설계자인 딸과 늘상 나누는 공통적인 화제 역시 미래 교육과 인간의 역할이다.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은 지켜질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고 했다.
강구상 교장은 "지식 전달은 AI가 탁월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읽고, 갈등을 중재하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일은 오롯이 교사의 몫"이라면서 "교사는 말 그대로 '단비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갈망하는 순간 내리는 단비처럼 교사도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타이밍에 맞춰 순리대로 고민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대는 변해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교사들과 그 길을 걸어간 선배들께 존경과 응원을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구상 초평초 교장 프로필> - 1990년 2월: 청주교대 초등교육과 졸업 - 1998년 2월: 한국교원대 대학원 초등체육학과(석사) - 1990년 2월 ~ 2017년 8월: 원남초, 모충초, 대소초, 월곡초, 남이초 교사 - 2017년 9월 ~ 2023년 8월: 주중초, 낭성초 교감 - 2024년 9월~ 현재 : 초평초 교장 1990년 교직 입문 '학불염이교불권' 신조 삼아믿음·진심어린 말로 학생들 긍정 변화 이끌어달라진 교권 인식·디지털화에 교육 전환 필요"사람 변화·성장 시키는 교육 본질 변하지 않아" 창간특집,강구상,초평초,교장,교직생활,3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