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1990년생 젊은 작가 김승현을 만나 그의 작업 세계와 올해 계획을 들어봤다.
/ 편집자 먼지털이, 형광색 빗자루, 조화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공산품들은 김승현 작가의 작업 안에서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청주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해 온 그는 익숙한 사물이 품고 있는 '시간'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하고 배치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낀다.
김 작가는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무얼로 만들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편"이라며 "재료에 따라 작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재료 선정에 가장 중점을 많이 두고 사물과의 대화를 많이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특히 쉽게 쓰이고 쉽게 버려지는 공산품에 주목한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잘 인식되지 않는 사물들이다.
지난해 충북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용도를 잃은 사물들'에서 김 작가는 '조화'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작업실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가덕공원묘지 인근에서 설과 추석 무렵 대량으로 버려진 헌 조화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좋은 의미의 충격을 받았다"며 "버려진 조화들이 가진 시간과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김 작가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가구'라고 하면 결혼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사서 평생 쓰는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값싸고 쓰기 좋은 가구를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반대로 조화는 진짜 꽃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오랜 시간 남는 존재가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산업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이 어떤 시간을 살아가는지, 물건이 갖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작업에서 사물의 색과 형태 역시 중요한 기준이다.
김 작가는 한국 공산품 특유의 색감을 '코리안 컬러'라고 부른다.
그는 "싸구려 형광색처럼 보이지만, 산업화 시대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예쁘게 만들기 위해 선택된 색"이라며 "극강의 가성비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마다 공산품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평면과 입체의 구분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는 "제가 작업하는 방식은 평면이나 입체나 구분없이 똑같아서 구분을 두고 작업하지는 않는다.
생각하는 방식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같다"며 "보통은 입체로 구현하기 어렵거나 제작비·규모의 한계가 있을 때 평면으로 옮겨오기도 한다.
두 방식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같다"고 말했다.
일본 유학 시기에도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를 재료로 삼았다는 점은 같았지만, 당시의 주제는 '위장'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며 "누군가 아프냐고,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생각도 하지 않고 괜찮다고 답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것 같은 상황을 병적으로 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멀리서 보면 강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귀여운 캐릭터들로 이뤄진 투구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다"며 "그러나 작업을 이어갈수록 그것이 위장이 아니라 '치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당시 그는 기존 작업을 80%가량 완성해둔 상태에서도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결국 준비했던 작품들을 직접 부쉈다.
"스스로에게 '위장'이라는 주제로 더 할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판단했다.
해오던 사람이니까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관성에 끌려가는 것 같아 너무 별로라고 느꼈다." 그때 작업실 한쪽에 놓인 플라스틱 빗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물건인데, 묘하게 햇빛이 들어와 비추는 모습에 색이 발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시각적인 역전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빗자루가 제 작업의 재료가 되려는 순간을 포착한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환점은 그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 작가는 "그때 주제를 계속 붙잡고 갔다면 오히려 이상한 작업이 나왔을 것"이라며 "그 이후로는 저 스스로도 위장을 덜 하게 됐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 작가에게 청주는 중요한 작업의 기반이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한 뒤 약 2년간 청주에서 작업하며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그는 "청주는 '노잼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미술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라며 "청주시립미술관, 대청호미술관, 창작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까지 모두 있다.
말도 안 되게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과 비교하면 작업실을 구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작가들이 작업에 집중하기 좋은 도시"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예술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보게끔 하고 싶다.
저는 밖에 뒹굴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물건들을 모아 작업을 한다.
작품을 통해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인지 아닌지를 단정하기보다는, 그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올해 상반기는 박사과정으로 인해 작품 활동이 제한적이지만 하반기부터 단체전을 통해 다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개인전도 구상 중이다.
그는 "조화, 빗자루, 먼지털이 같은 공산품들과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며 "앞으로도 이 오브제들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미술 인프라 풍성' 청주 중심 활동빗자루 등 평범한 재료 조합·배치예술 경계 허무는 작업 전개 집중하반기 단체전·내년 개인전 구상 창간특집,김승현작가,예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