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금감원 잇는 지능적 각본
출국 직전 카운터에서 전격 체포
출국 직전 카운터에서 전격 체포
태국 방콕에 거점을 두고 자산 보호를 빌미로 수십억 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카드사와 검찰 등을 사칭해 단계적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치밀한 수법으로 불과 5개월 만에 7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태국 소재 보이스피싱 콜센터 관리자와 상담원 등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38명으로부터 총 70억 8500만 원을 편취한 일당 7명을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태국 방콕에 콜센터를 차려놓고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피싱 사기를 벌였다. 외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총책의 지시 아래 팀장급 관리자와 상담원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였다.
이들의 범행은 한 편의 연극처럼 정교했다. 먼저 카드사 배송원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해당 업체와 금융감독원, 검사를 차례로 연결하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당신 명의의 대포통장이 개설되어 사기 범죄에 이용되었으니 재산보호 신청을 하라”며 공포심을 조장했다.
이후 “특급보안 사건인 만큼 약식조사로 진행하겠다”며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후 “보유 중인 자산을 모두 수표로 출고해 직원에게 전달하면 검수 후 돌려주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안심시켜 직접 대면을 유도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라는 말에 속아 고스란히 거액의 수표를 현장에서 건네줬다.
경찰은 첩보를 토대로 지난해 8월 수사에 착수해 콜센터 팀장급인 A씨의 국내 입국 사실을 확인한 뒤 동선을 추적해 왔다. 그는 다시 태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 체크인 카운터에 몸을 드러낸 그해 10월 경찰에 전격 체포됐다. A씨의 지시를 받던 상담원 6명도 차례로 붙잡히며 조직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경찰은 총책을 포함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나머지 조직원 5명에 대한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 범죄 수익금의 흐름을 파악하는 등 윗선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만큼 혼자 판단하지 말고 수사기관 상담을 받거나 주변인과 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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