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건네면 짧게 숨을 골랐다. 그 공백에는 선수 시절의 긴 랠리처럼 계산과 성심(誠心)이 섞여 있었다.
취임 8개월 차. 눈송이가 흩날리던 지난 12일 대한배드민턴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개월이었다"며 빙긋이 웃었다.
한국 배드민턴은 2년 전 파리 올림픽 이후 내우에 시달렸다. 협회는 소방수가 필요했고 원광대에서 교편을 잡던 '젊은 피' 김 회장이 광장에 올랐다. 지난해 1월 당선 4월 임기를 시작해 '김동문 시대'가 닻을 올렸다.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한국 배드민턴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한 시기였다. 내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선수와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무겁게 느끼며 보냈다. '책임의 무게'를 실감했다."
임기 첫해는 배드민턴으로 치면 서브를 넣는 시간. 김 회장 목표는 간명했다. 신뢰였다. 신뢰 회복 첫 단추를 급선무로 삼았다.
"협회를 향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를 위한 구조적 정비 첫발을 뗀 데 작은 보람을 느낀다. 재정과 규정, 소통 구조 등에서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는 협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2025년은 대화하는 협회를 향한 첫 계단에 발을 올린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일각에서 제기한 재정 악화 우려도 빠르게 대응했다. 스포츠 헬스케어 브랜드 '르피랩'과 2년 18억 원 후원 협약을 맺어 염려를 불식시켰다. 시대 흐름을 따르면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양수겸장의 묘수를 뒀다.
"개인 스폰서 허용은 시대의 흐름이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올라타야 한단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아울러 협회 재정 안정성도 반드시 지켜야 했다. (살림이 궁핍해지면) 유소년 대표팀 지원과 국제대회 파견, 지도자 교육 등 협회 주요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탓이다."
"르피랩과 신속한 계약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대응 수(手)였다. 후원처 추가 발굴도 예정돼 있다. 현재 안세영, 서승재 등 한국 선수들이 워낙 걸출한 경기력을 뽐내고 있어 (시장) 분위기가 좋다.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적지 않다."
전국 각지에서 1만 명이 넘는 인파가 김해로 몰려들었다. 이른바 '안세영 효과'가 본격 이륙한 2025년을 기점으로 배드민턴 저변 확대 최적기가 도래했단 분석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김 회장 역시 "생활체육은 더 이상 엘리트 또는 전문 체육의 아랫 단계가 아니"라면서 "학교체육과 실업-동호인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호혜적 생태계를 만드는 게 주요 목표다. 임기 중에 생활체육이 반드시 협회 핵심축으로 발붙이는 구조의 변혁을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훗날 ‘김동문 회장 시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김 회장은 '선수가 중심이 되고 원칙이 바로 선 협회'를 말했다.
"엘리트 선수에게는 선수가 중심이 되고 원칙이 바로 선 협회가 김동문 회장 때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아울러 한국 배드민턴 중심축은 생활체육 동호인과 팬들이다. 이들을 위한 많은 이벤트와 제도 정비를 준비 중이다. 국내 엘리트 선수들이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고 계신데 (물이 들어온) 이번 기회에 우리 동호인에게도 '정말 새로운, 배드민턴 동호인계 체질 변화가 김동문 회장 때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남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며 엘리트뿐 아니라 생활체육과 팬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한국 배드민턴 출발점을 열망했다.
김 회장은 배드민턴계 난맥상 타개와 생활체육-엘리트 통합 과업을 안고 등판했다. 임기 첫해부터 달음질쳤다. 발로 뛰는 추진력으로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고 '선출의 언어'로 산적한 현안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선수 출신 인사가 밖에서 비판만 하기보다는 직접 책임지는 자리에 서 변혁을 유도해야 한단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했다"는 그의 변(辯)처럼 김 회장은 이제 선언을 제도로 뿌리내리려는 '견실한 임기 2년차'를 꿈꾸고 있다. 셔틀콕의 깃털을 닮은 무수한 눈송이가 격려하듯 따닥따닥 창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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